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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79)원종-7- 삼별초의 항전은 과연 자주적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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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09 19:19 조회1,9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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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 삼별초 항전의 의의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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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삼별초 항전은 과연 자주적이었는가?
24concent_02_pic01.jpg무인정권의 붕괴는 1170년 무인정변으로 탄생한 하나의 정치체제가 꼭 100년만에 종식되었음을 뜻하였고, 몽고라는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다. 원의 간섭은 100여년이나 계속되었다. 바로 그 전환점에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으로서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자리잡고 있다.
무인정권이 붕괴되자 국왕과 강화파로 구성된 조정은 삼별초를 철폐시키고 그 명단도 압수하자
삼별초가 강화에서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배중손을 중심으로 모여서 새로운 왕을 세우고 관리를 임명하는 등 개경으로 환도한 고려조정과 대립하는 또 하나의 정부를 세웠다.

삼별초가 단기간에 세력을 확장하고 여러해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삼별초의 병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의 광범한 지지와 호응이 있었기에 삼별초가 또 하나의 고려정부로 존재하면서 몽고 및 몽고와 결탁한 개경정부와 계속 항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 삼별초에게 일반 백성들의 호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진도로 내려가면서 고려 왕실이 12대째로 끝나고 남쪽으로 내려가 황제의 서울을 세우리라는 참언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별초가 민심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만한 강제력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던 상황에서 그처럼 백성들이 삼별초를 지지한 것은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24concent_02_pic02.jpg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인정권의 붕괴와 강화파의 승리는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일 따름이고 몽고와의 강화는 새로운 권력층과 침략자의 결탁일 뿐이었다. 따라서 몽고침략과 지배층의 과중한 수탈에 맞서 싸워 왔던 이들로서는 이제 몽고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쳐오고 또 지배층의 수탈이 더욱 심해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항전하지 않을 수 없엇던 것이다.
1270년부터 3년에 걸쳐 일어난 삼별초의 항쟁은 첫째, 지배층 내부의 정쟁에서 패배한 무인정권의 잔존세력이 일으킨 정치적 반란이고 두 번째 12세기말 민란의 전통과 대몽항쟁의 전통을 계승한 백성들의 항쟁이라는 두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외세의 침략과 그에 결탁한 지배층에 반대하는 백성들의 저항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삼별초는 무인정권의 무력기반이었고, 권력내부의 정쟁에서 무인정권이 패배하자 그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삼별초가 떠받들고 있었던 무인정권을 회복하고, 가깝게는 눈앞에 닥친 정치적 보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세력이 몽고와 결탁했기 때문에 삼별초의 반란이 대몽항쟁의 연장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인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하였던 삼별초의 전력이나 권력투쟁에서 파생된 정변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24concent_02_pic03.jpg▶ 이런 삼별초의 항쟁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내려져 왔다. 1930년대 처음 부각되었는데, 당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현실에서 삼별초의 대외항쟁은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5ㆍ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결핍된 정통성을 만회할 목적으로 민족 주체성의 확립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그러한 환경속에서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고려 무인정권을 민족적이고 진취적인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군사정권의 상징을 미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 그러나 외세와 싸웠다는 것만으로 ‘민족적’ ‘자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24concent_02_pic04.jpg무인정권에 기생하며 각종 특혜를 받고 백성들의 항쟁을 억압하는 역할을 했던 군사조직이 무인정권 붕괴 이후 갑자기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최씨정권의 항전론이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었는지 정권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구분했던 것처럼, 삼별초 항쟁 역시 그 목적과 동기를 엄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민중이 빠진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주의나 국수주의와 같은 극우 논리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삼별초의 예에서 보듯이 반민중적인 존재는 절대로 민족적이거나 자주적일 수 없고 독재자가 표방하는 민족주의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본 연재중 강종,고종,원종,... 고려 왕의 자료는 [한국의 왕]http://koryo.urinara.com/에서 옮겨 왔음을 알려드립니다.  붉은 글씨도 편집자가 강조하기 위해 임의로 칠했슴니다. 

영환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대부님 연속되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 김주회 - 79회째 이어지는 연재.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삼별초 항쟁 역시 그 목적과 동기를 엄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의 항파두리성과 관련하여 엊그제 제주시청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삼별초의 항몽과 민족주의라는 오판된 해석으로 홍보하고 있는 각종 안내판과 각 여행사 가이드들의 안내문에 대한 바른 시정 요구였습니다. 시정해 준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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