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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78)원종-6- 삼별초의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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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09 19:14 조회1,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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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탐구 - 삼별초 항전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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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삼별초 항전
원종 즉위 후 원의 고려복속정책이 가속화되면서 개경환도 문제를 놓고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친몽파와 대몽강경책을 구사하던 무인정권 사이에 대립이 전개되었다. 임유무까지 제거되어 개경환도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원종은 삼별초의 명부를 빼앗아 병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고려의 최정예부대인 삼별초의 붕괴를 의미하였다.

24event_04_pic01.jpg1270년 6월 장군 배중손과 야별초를 이끌고 있던 노영희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키고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삼별초는 일반 백성들의 호응을 받으며 반몽세력을 규합해 갔다. 삼별초는 이같은 민간의 동향을 기반으로 반몽세력을 규합하려 했던 것이다. 삼별초는 강화도에 관부를 설치하고 강화도에 남아있건 귀족들을 모두 배에 태워 진도로 이송하였다.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는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자 고려정부는 원군과 합세하여 진도를 공격하였다. 여몽연합군과 배중손이 지휘하는 삼별초군 간에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삼별초는 진도, 거제도, 남해, 합포(마산), 동래, 김해 등지에서도 강력한 군사활동으로 벌였다. 11월에는 제주도를 공략하여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였다.
1271년 친몽세력인 홍다구가 몽고군을 지휘하고 되었고, 이들과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과 함께 진도에 대해 총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전투에서 진도가 함락되어 배중손이 전사하고 승화후 왕온이 홍다구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삼별초는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24event_04_pic02.jpg김통정이 잔여세력들을 규합하여 제주도에 근거지를 옮기고 전열을 정비하였다. 이들은 안남도호부(경기도 부천)를 공략하여 여몽연합군의 허를 찌르기도 하였다. 이에 여몽연합군은 함선 160척과 1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1273년 2월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여몽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반기를 든지 3년만에 김통정은 전사함으로써 삼별초의 난은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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