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주변인물들(79)원종-7- 삼별초의 항전은 과연 자주적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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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09 19:19 조회2,324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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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대부님 연속되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 김주회 - 79회째 이어지는 연재.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삼별초 항쟁 역시 그 목적과 동기를 엄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의 항파두리성과 관련하여 엊그제 제주시청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삼별초의 항몽과 민족주의라는 오판된 해석으로 홍보하고 있는 각종 안내판과 각 여행사 가이드들의 안내문에 대한 바른 시정 요구였습니다. 시정해 준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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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정권의 붕괴는 1170년 무인정변으로 탄생한 하나의 정치체제가 꼭 100년만에 종식되었음을 뜻하였고, 몽고라는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다. 원의 간섭은 100여년이나 계속되었다. 바로 그 전환점에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으로서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자리잡고 있다.
▶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인정권의 붕괴와 강화파의 승리는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일 따름이고 몽고와의 강화는 새로운 권력층과 침략자의 결탁일 뿐이었다. 따라서 몽고침략과 지배층의 과중한 수탈에 맞서 싸워 왔던 이들로서는 이제 몽고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쳐오고 또 지배층의 수탈이 더욱 심해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항전하지 않을 수 없엇던 것이다.
▶ 이런 삼별초의 항쟁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내려져 왔다. 1930년대 처음 부각되었는데, 당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현실에서 삼별초의 대외항쟁은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무인정권에 기생하며 각종 특혜를 받고 백성들의 항쟁을 억압하는 역할을 했던 군사조직이 무인정권 붕괴 이후 갑자기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최씨정권의 항전론이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었는지 정권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구분했던 것처럼, 삼별초 항쟁 역시 그 목적과 동기를 엄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