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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80)원종-8- 원의 일본정벌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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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10 18:44 조회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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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 일본정벌 계획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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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고려와 원의 일본정벌 계획
원은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해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정벌을 단행하였다. 그 동기는 기본적으로 세조 쿠빌라이의 천하통일이라는 정복욕구에서 나온 것이지만, 송대 이래 형성되어 온 동아시아 교역권 및 정치적 질서유지를 재건하고자 하는 욕구와 고려ㆍ일본ㆍ남송의 연결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이러한 원의 일본원정에는 원의 강요에 의해 고려가 깊숙히 간여하였다. 그에따라 고려에 부과된 인적ㆍ물적 부담이 엄청나 고려가 지금까지 원에 장기간 대항할 수 있었던 국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다. 고려가 일본원정에 참여하게 된 시초는 원 사신을 안내하여 일본을 초유(招諭)케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이다.

24politics_02_pic01.jpg원종7년(1266) 원이 흑적(黑的)ㆍ은홍(殷弘) 등을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하면서 고려로 하여금 그들을 안내하게 하자 송군비(宋君斐)ㆍ김찬(金贊) 등이 호송을 맡았으나, 거제도에 이르러 풍파가 험하다는 이유로 귀환하였다. 그 다음해에 원은 일본 초유를 고려에 위임하였는데, 일본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원 세조의 더 많은 요구를 초래하였다. 원종8년 8월 원이 일본에게 조공을 요구하였는데, 이에 고려가 끼어드는 것이 고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장용은 판단하였다. 그래서 흑적에게 편지를 보내 일본에게 봉서를 독촉하지 말고 일본이 판단하여 행동하는대로 기다리자고 하였다.
그런데 원과 고려정부는 각기 일본에 화호를 강요하는 내용의 국서를 전달하였다. 원종9년 12월 지문하성사 신사전(申思佺)ㆍ시랑 진자후(陣子厚)ㆍ기거사인 반부ㆍ흑적ㆍ은홍 등을 일본에 보내고 이듬해 3월 이들은 대마도에 이르러 왜인2명을 잡아왔다. 원은 이들에게 일본의 조회를 요구하고 방면하였다.
반면 원은 고려에 대해 탐라로 하여금 100척을 만들도록 하고 일본침공을 서서히 준비하였다. 10여차례 원과 고려가 사람을 보내었지만, 일본에서 이들이 구류되거나 피살되어 원의 일본초유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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