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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82)충렬왕-3-인물탐구-일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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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15 21:19 조회1,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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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 일연 title_back3.gif title_logo.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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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일연(1206-1289)
25person_03_pic01.jpg성은 김씨이고, 처음 법명은 견명(見明)이며 처음 자는 회연(晦然), 자호는 목암(睦庵)이다.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출신으로 김언정(金彦鼎)의 아들이다.

고종1년(1214) 지금의 광주지방인 해양에 있던 무량사에 가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여러 곳의 선문을 방문하여 수행하였다. 1227년 승과 선불장에 응시하여 상상과에 급제하였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ㆍ남해ㆍ윤산 등지에서 전란을 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원종2년(1261)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가 선월사에 머물면서
지눌의 법을 계승하였다. 충렬왕3년(1277)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25person_03_pic02.jpg1281년 6월 동정군(東征郡)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게 하였다.
이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군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9년 6월 병이 들자 7월7일 왕에게 올린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그는 왕실의 극진한 대우와 후원을 받았지만, 원의 간섭으로 고려의 자주성이 크게 손상된 상황에서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시대인식은 그와 제자들이 함께 편찬한 《삼국유사》에 잘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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