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와 김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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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4-02-03 21:40 조회1,909회 댓글0건본문
○ 개똥이[介屎]는 전 선조(宣祖) 때의 늙은 궁인이었다. 선조에게 사랑을 입었는데 사람됨이 흉악하고 교활하였다. 선조가 세자를 바꿀 뜻이 있었기 때문에 광해가 스스로 불안한 것을 추측하여 알고는 은밀히 광해와 접촉하여 뒷날의 계획을 세웠다. 약으로 선조를 시(弑)하는 참변도 그 손에서 나왔으나, 광해는 실로 미리 음모에 관계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전하기를, “당시의 사초에 바로 쓰기를 ‘약밥이 동궁에서 왔는데 얼마 안 되어 승하하였다.’ 하였다. 이 약밥이란 것은 지금 시속에 과일을 섞은 찰밥으로 대개 선조가 오랜 중병 끝에 동궁에서 올린 약밥을 먹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한때 혹 의심하는 말이 있었으나, 소위 당시의 사관이란 반드시 유영경(柳永慶)의 무리일 것이니 기록한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하였다. 또 전하기를, “인조가 일찍이 이 말을 힘써 물리쳐 이르기를, ‘당시 선조께서 위독하실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상세히 알고 있다. 선왕께서 병을 앓으신 뒤에 맛있는 음식을 생각할 즈음, 동궁의 약밥이 마침 왔기 때문에 지나치게 잡수시고 기(氣)가 막혀서 이내 돌아갔을 뿐이었다. 중간에 어떤 농간이 있었다는 말을 실로 밝히기 어렵다.’ 하였다. 인조의 말이 이와 같으나 대비가 광해의 죄를 헤아릴 때, 군부를 시해(弑害)했다는 대목을 분명히 들어서 말하였기 때문에 감히 이 사실을 아주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일월록》
광해가 탐욕스럽고 음란하였으므로 개똥이가 안팎에서 제 마음대로 하며 이첨과 한 마음이 되어 어울렸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아 기강이 전연 없었으니, 대궐 안의 모든 일이 그의 손에서 한결같이 결정되었다. 궁녀가 광해의 잠자리를 모시는 것도 광해가 개똥이의 허락을 얻어야 되었기 때문에 개똥이가 여러 계집에게서 뇌물을 받았는데, 그 값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광해로 하여금 동침하게 하면 광해가 감히 거스르지 못하였다. 하루는 광해가 개똥이를 데리고 잠자리에 들려 하였는데, 박씨라는 옛 상궁이 땅에 꿇어앉아 간하니 광해가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또 개똥이의 말을 어기는 일이 있을 때는 성내어 말하기를, “큰 덕을 감히 잊는단 말이오. 내 입에서 말이 나올 것 같으면, 임금이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 하니, 광해가 당황하고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이 때문에 추한 소문이 바깥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개똥이가 음탕하고 교활한 상놈 정몽필(鄭夢弼)이라는 자를 매우 사랑하여 양아들이라 하고 바깥에 따로 거처를 마련하여 두고 몽필을 살게 하였는데, 만금의 재물을 쌓아 두었다. 몽필이 드디어 세력을 크게 행하여 백성들의 전답과 노비를 강제로 빼앗아 문서를 바치게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제집에 사사로 만든 옥에 가두니, 이름을 □궁(□宮)이라 하였다. 개똥이가 밤과 새벽에 드나들며 몽필과 거리낌 없이 거처하니,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음란한 행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개똥이가 몽필에게 빠져서 겸하여 윤 소의(尹昭儀)를 중매하여 몽필과 음행하게 하였다는 말까지 있었다.
○ 이보다 먼저 이귀의 딸이 김자점의 동생 자겸(自兼)의 아내였는데, 일찍이 과부가 된 후에 정조를 잃고 절간으로 떠돌아다니며 아미타불을 섬겼는데, 앞설에는 자겸이 젊어서 좋아하여 죽을 때에 아내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삼가 불도를 닦으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씨가 마침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산에 들어가서 숨어 살았다고 한다. 간음한 일이 발각되어 잡히어 심문을 당하게 되니 궁중에 들어가기를 원하므로 광해가 허락하였다. 일설에서 광해가 풀어주고 성중(城中) 자수궁(慈壽宮)에 있게 하였는데 이씨가 이것이 인연이 되어 궁중에 출입하니 대궐 안 사람들이 모두 생불(生佛)이라 일컬어 신봉함이 비할 데가 없었다 한다. 궁중에 들어가게 되어서는 김상궁과 사귀어 모녀 간을 맺게 되었다. 항상 말하기를, “아버지 이귀와 시숙 자점의 충성을 불행하게도 대북(大北)이 질시하여 항상 모해를 받는다……” 하였다. 나날이 억울한 것을 호소하고 또 자점을 후원하여 뇌물을 쓰는데 부족하면 김상궁에게서 꾸어서 다른 궁인에게 주고 또 다른 궁인에게 꾸어서 상궁에게 바치니, 이렇게 돌린 것이 수천 냥이므로 모든 궁인들이 기뻐하여 모두 자점을 성지(成之)라 자를 부르며 의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광해가 유상(惟翔) 등이 아뢰는 말을 듣고 매양 잡아 신문하고 싶어도, 상궁과 개똥이[介屎] 등이 말하기를, “성지는 지극히 충성스런 사람이며, 더구나 한미한 선비에 불과한데 무슨 권력이 있어서 다른 모의를 할 것입니까.” 하니 광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잡록(續雜錄)》 ○ 일설이란 것은 《 일월록(日月錄)》에 있는 것이다.
○ 계해년 1월에 정언 한유상(韓惟翔) 등이 아뢰기를, “이귀와 김자점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미며 서궁을 돕고 보호하였으니 화가 멀지 않아 일어날 것입니다. 청컨대, 미리 도모하소서.” 하였다. 이때 광해는 마침 김상궁(金尙宮)과 후원에서 잔치를 베풀어 놀고 있었는데 김상궁이 광해의 손을 잡고 크게 소리지르며 말하기를, “바깥 의논이 가소롭습니다. 성지(成之)자점의 자 김생원이 어찌 이러한 뜻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광해가 “천천히 처결하겠다.” 하니 유상 등이 또 아뢰기를, “크게 간(奸)한 것은 신(信)과 비슷하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립니다. 훗날 설사 후회할 일이 있어도 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 마소서.” 하니 광해가 이르기를, “증거 없는 말로 충성되고 어진 이를 억울하게 해치지 말라.” 하였다. 이로써 흉악한 무리들의 계교는 행해지지 못하였고 반정의 모의는 날로 굳어졌다. 《조야첨재》
▣ 솔내 -
▣ 김주회 - 낙서공 관련 기록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김윤만 -
▣ 김계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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