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전서공파 소개자료 03 ---益精 손자 壽寧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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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2-12 17:30 조회1,555회 댓글0건본문
■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3/04/05 08:21 (from:61.75.59.154) 조회 : 74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김수녕(金壽寧)
▣ 제2권 p211<용인현 누정(樓亭)>
--신정(新亭) : 객관 동쪽에 있다. ○김수녕(金壽寧)이 지은 기문에, “용인은 작은 고을이다. 왕도와 인접한 까닭으로 밤낮으로 모여드는 대소 빈객이 여기를 경유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는 대개 남북으로 통하는 길목인 때문이다. 옛 원관(院館)이 작아서 겨우 하룻밤을 묵을 수 있으나, 매우 더운 때이면 답답하고 트이지 않아서, 손님이 와도 더운 느낌과 번울(煩鬱)함이 가실 수 없어, 오랫동안 애먹었다. 천순(天順; 명나라 영종의 연호) 4년 겨울에 박군이 이 고을 원으로 와서, 세부(稅賦)를 누구럽게 하고 정사를 민첩하게 하니, 온갖 폐단이 다 없어지고, 아전과 백성이 두려워 하였다. 하루는 군이 아전에게 의논하기를, ‘내가 재목을 모아, 정자를 지어서 내객(來客)을 위해 납양(納凉)하는 곳을 만들고자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였다. 군의 정사에 덕을 보았은 즉, 모두 ‘힘껏 하기를 원한다.’ 하는 것이었다. 이에 공인(工人)은 힘써 일하고, 역군[役夫]도 부지런히 하였다. 새벽으로 밤으로 일한 보람이 드러나서, 달이 못되어 완성하였다. 시작할 때에 백성이 정자인 줄을 몰랐는데, 완성한 뒤에야 바라보고, ‘사또는 예전에 말하던 신명(神明)이라는 이가 아닌가. 정자를 지었는데 우리들은 어찌 알지도 못했나.’ 하였다. 서로 더불어 감탄하면서 새로 지은 것을 경사로 여겼다. 지금 세상에 원된 자를 보면, 술취한 꿈속에서 세월만 보내고 관부(官府)를 주막같이 여겨서, 기울어진 뒤에 버티고 비샌 다음에 막는다. 심한 자는 기와 한 장도 바꾸지 않고, ‘나는 백성을 사랑한다.’ 하며 풀 한 포기 없애지 않고, ‘관정(官庭)에 송사하는 자 없다.’ 하니, 관사가 허물어 지는 것은 항상 이런 무리한데서 연유한다. 어찌 일에 용기를 내어 시작하기를 꽈하는 자 있으며, 또는 백성도 모르게 하면서 이렇게 성취한 자 있으리오. 내 일찍이 남쪽으로 가다가 선소(宣召)하심을 받고 용인읍을 지나는데, 박군이 나에게 붓을 주면서 기문을 청하였다. 내 졸문(拙文)임을 말하니, 군이 말하기를, ‘정자에 기문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자 이름이 없으니, 어찌하랴.’ 하여, 내 말하기를 , ‘이름이 있는 것이 진실로 옳지마는, 이름이 없어도 또한 않될 것도 없다.용인읍에 군같은 원이 없었더라면 정자를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정자를 지을 수 없었은즉, 정자 이름이 어디에서 나오겠나. 이름이 없다는 것으로 이름삼아도 역시 이름으로서 좋은 것이다.’ 하니 군이 나에게 더욱 강청(强請)하였다. 그리하여 용인 백성이 우러러보고 새로 지은 것을 경축하던 뜻을 따서 이름 짓기를 ‘신정’이라 하였다. 전(傳)에, 신(新)이란 것은 고(故)가 있으므로서 이다.‘ 하지 않았느,s가. 처음부터 군자가 중하게 여기는 뜻이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박군의 이름은 거명(居明)이고, 자는회문(晦文)이며, 밀산인(密山人)이다.” 하였다.
▣ 제3권 p57<전의현 제영(題詠)>
--현고징교목(縣古徵喬木)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고을이 오래 됨을 교목이 말해 주고, 연기 차가우니, 폐성임을 알겠도다.” 하였다.
▣ 제3권 p433<안동대도호부 본조>
--김수녕(金壽寧) : 익정(益精)의 손자이다. 나이가 18세 때에 계유년의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참렬하였으며, 벼슬이 호조참판에 이르고, 복창군(福昌君)에 봉작되었다. 시호는 문도(文悼)이다. 문장(文章)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날렸다.
▣ 제4권 p100<성주목 제영(題詠)>
--호산형승갑남주(湖山形勝甲南州)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호산의 좋은 경개가 남주에 으뜸인데, 백 가지 온갖 모양 봄빛이 아직 가을되지 않았구나.” 하였다.
▣ 제4권 p237<합천군 제영(題詠)>
--용문고처희초등(龍門高處喜初登)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오늘 강양(江陽)에서 한 번 취하니, 용문 높은 곳에 처음 올라 기쁘다.” 하였다.
▣ 제5권 p343<안악군 누정(樓亭)>
--이요루(二樂樓) : 객관 동쪽에 있는데, 연못이 있다.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홰나무는 천년이나 된 고을에 늙었고, 꽃은 백 척 누대에 둘렀네. 못이 열렸으니 대화지(大華池)에 연한 듯, 산이 가까우니 나부산(羅浮山)을 껴안은 듯. 이 세상에 선경(仙境)이야 있으랴. 하늘 서쪽에 좋은 고을이 있네. 공부(工部 두보)의 시흥 참을 수 없어, 때때로 낭만(浪漫)한 놀이 한다네.” 하였다.
▣ 제5권 p414<해주목 제영(題詠)>
--금도(金桃)는 붉은 것이 벌써 흐트러졌네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금도는 붉은 것이 벌써 흐트러졌고, 은행은 푸른 잎 처음으로 그늘지네.” 하였다.
▣ 제5권 p528<삼척도호부 제영(題詠)>
--산에 의지한 촌집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엇 비슷한 고목을 앞 여울에 가로질러서, 자국마다 서늘한 마음 몇 번이나 놀랐던가. 평지에 이른 풍파 아무도 모르면서, 다리에 와서는 두렵게 보누나.” 하였다.
▣ 제6권 p56-57<평창군 제영(題詠)>
--바른 산 그늘의 넓고 먼 곳에 이르니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빨리 달리는 역마(役馬)를 타고 머무를 겨를이 없어, 바로 산 그늘의 넓고 먼 곳에 이르렀다. 사마천(司馬遷)같이 멀리 유람함은 아직 그치지 않았고, 진등(陳登)같은 호기(豪氣)는 일찍이 없어지지 않았노라. 시름을 씻는 데 병에 술이 없을 수 있으랴. 기이(奇異)한 것을 구하는데 도리어 상자에 글이 있구나. 이번 유람의 기절(奇絶)함이 평생에 으뜸되니, 좀 먹은 책속의 좀벌레 같은 생활이 우습기만 하여라.” 하였다.
☞ 진등(陳登) : 동한(東漢) 때의 사람이니 자는 원룡(元龍)이다. 허범(許氾)이라는 사람이 유비(劉備)에게 그의 인물평을 말하기를, “원룡은 호해(湖海)의 선비로서 호기(豪氣)가 일찍이 떨어진 일이 없다.”하였다.
▣ 제6권 p176-177<영흥대도호부 제영(題詠)>
--울총(鬱蔥)한 아름다운 기운이 신주(神州)를 싸고 있네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하늘이 맑은 시냇물을 보내어 땅에서 솟아 오르니, 울총한 아름다운 기운이 신주를 싸고 있네. 순(舜) 임금의 옛날 밭갈고 고기잡던 그 자취는 모두 이 용흥강과 성역산(聖歷山) 머리에 있구나.” 하였다.
☞ 성역산(聖歷山) : 예전 순 임금이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다가 임금이 되었다 한다. 마침 영흥의 산 이름이 성역산이므로 이태조와 순 임금을 비유한 것이다.
▣ 제6권 p213<덕원도호부 제영(題詠)>
--이 덕원(德源)은 하늘이 만든 땅이로다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반도(蟠桃)가 열매를 맺으려면 천 년이 걸리는데 선리(仙李)의 뿌리가 서리는데 8백년이 걸렸다네. 아름답다, 이 덕원은 하늘이 만드신 땅이로다. 면면(綿綿)하게 뻗은 오이덩굴 한 악장(樂章) 왕업(王業)의 아름다움을 찬송하였네.” 하였다.
☞ 선리(仙李) : 조선은 이씨가 왕이었으므로 이씨를 신선이씨라고 미화하여 말한 것이다.
☞ 악장(樂章) : 시전에 주나라 왕실을 예찬한 노래에 면면하게 뻗어나가는 오이덩굴이라는 말이 있다.
▣ 제6권 p217<문천군 누정(樓亭)>
--절문루(節文樓) : 객관 북쪽에 있다.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호기(豪氣)는 백 척(尺)의 다락이라고 들어 왔지만, 나르는 듯한 누각이 시원스런 이 바닷가에 있을 줄을 어찌 알았으리요. 십천두(十千斗)의 술을 가지고 진왕(陳王)의 즐거움을 하려하지 않으니, 한 번 웃는 월녀(越女)의 만류함에 관계없는 것일세. 대지는 찌는 듯 더운데 바람은 고요하고, 하늘은 감색으로 푸른데 불이 흘러 내리는 듯하네. 당시의 더위먹어 죽은 사람을 응당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인데, 이같이 시원하게 노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였다.
☞ 진왕(陳王) : 이태백의 시에 진왕 옛날 양평락에 한 말 술 십천(十千) 주고 사서 마음대로 즐겁게 놀았다. 하였는데, 진왕은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진사왕에 부하여서 진왕이라 한 것이다.
☞ 월녀(越女) : 한퇴지의 시에 월나라 서시가 한 번 웃으니 3년을 머물렀다.라는 시귀가 있다.
▣ 제6권 p231<단천군 산천(山川)>
--마운령(磨雲嶺) : 본군 남쪽 37리에 있다. 옛날에는 두을외대령(豆乙外大嶺)이라 일컬었다.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아늑한 마운령(磨雲嶺)의 최상단(最上端)을, 비틀거리며 가는 늙은 말 안장조차 못 이기네. 새만이 통행하는 길이 3천리나 된다고 전날에 들었더니, 이제 양의 창자같은 백 여덟 굽이를 오르네. 자는 안개 가벼운 산아지랭이에 옷은 반이나 젖었고, 매달린 언덕 위 절벽길은 두 눈이 차가웁네. 그대에게 말하노니 동쪽으로 가는 일을 이야기 하지 말라. 귀밑털이 서녘 바람에 또 얼룩지려 한다.” 하였다.
▣ 제6권 p331<경흥도호부 제영(題詠)>
--성 아래에 한 줄기의 강물이 길게 흐르다 :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누른 구름은 국경에 가득하여 나그네의 근심을 자아 내는데, 성 아래 강물은 한 줄기가 길게 흐른다. 구슬픈 오랑캐의 피리소리 행여나 나그네의 긧전을 스치지 말아다오. 소리마다 국경의 여행을 괴롭혀 주느니.” 하였다.
▣ 제6권 p581<성천도호부 누정(樓亭)>
--강선루(降仙樓) : 객관 서쪽 모퉁이에 있다.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우연히 송양(松讓)을 지나다가 꽃다운 샘에 목욕하고, 머리 말리며 흘골산 앞으로 돌아오네. 한 물은 뜰을 따라 물결이 다시 고요한데, 두어 봉우리는 문을 헤치고 들어와 푸르게 잇닿았네 하여야. 안개가 개인 산시(山市)의 저물려는 햇빛에 안개가 맑고 비가 내릴려는 때에 바람은 강루(江樓)에 가득하네. 재주없어 황학루(黃鶴樓)의 글귀를 이루지 못하니. 다만 앵무주(鸚鵡洲)에 풀만 처량하네. 하였다.
☞ 황학루(黃鶴樓) : 황학루는 중국 호북성 무창에 있는 누각인데, 최호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옛 사람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사라지고, 여기에는 헛되이 황학루만 남아 있네.”
<출전 : 신증동국여지승람/민족문화추진회/1982>
■ 작성자 :이왕섭 작성일 : 2003/03/24 20:07 (from:218.237.120.71) 조회 : 124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의현(全義縣) 편에 실려있는 선안동김씨의 인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18권의 충청도(忠淸道) 전의현(全義縣) 편에 선안동김씨의 3명의 인물에 대한 내용이 있기에 옮긴다.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 전서공파의 김익정(金益精), 김익렴(金益濂), 김수녕(金壽寧) 3인이다.
【전의현(全義縣)】
<우거 본조(寓居本朝)>
●김익정(金益精) : 안동(安東) 편 인물조에 자세히 발원하여 있다.
●김익렴(金益濂) : 김익정(金益精)의 아우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다. 두 사람 모두 3년 간 여묘(廬墓)를 살았다.
<제영(題詠)>
●김수녕(金壽寧)
제영 현고징교목(縣古徵喬木) : 김수령(金壽寧)의 시에, "고을이 오래됨을 교목이 말해 주고, 연기 차가우니 폐성(廢城)임을 알겠도다." 하였다.
※본조(本朝)란 조선(朝鮮)을 말한다.
※제영(題詠)이란 정해진 제목에 따라 시를 읊거나, 또는 읊은 시가(詩歌 : 詩詠)를 말한다. 주로 경승지(景勝地)를 대상으로 읊은 자연에 대한 찬미(讚美)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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