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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산칭해 양관인 서 김 창(金 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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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4-03-05 21:04 조회1,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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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중산칭해 양관인 서(與中山稱海兩官人書)

 김창(金敞)

초여름 날씨가 점점 더워 오는데 엎드려 생각건대 장생천기력(長生天氣力)의 몽고대조국사해황제(夢古大朝國四海皇帝)의 은혜를 입고 있는 대관인 각하께서는 기체 천복(千福)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오로지 수부(帥府)에서 어루만져 보존해 주시는 은혜를 입어 다만 여러 신하들이 모두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 이르러서도 면식(眠食)할 수 있으니, 성한 덕망의 지극함을 어찌 말로 다 펼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우리나라의 원수(元帥)가 상국의 원수 하칭찰라(何稱扎剌)와 더불어 강화(講和)하여 투항해 절하였고, 그 공부(貢賦)의 제도는 성길사(成吉思) 황제의 칙령이 있어서 한 해에 열 사람을 보내어 싸서 오게 함을 일정한 법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신 착고여(着古與)가 전해 오는 예에 의해서 공부를 가지고 떠나갔는데 중도에서 파속인(波速人)에게 해를 입어 이때부터 길이 막혀 다시는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묘년에 이르러 상국의 관인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묻기에 친형 회안공(淮安公)을 보내어 그 까닭을 갖추어 말함으로써 얼음 녹듯이 의심이 풀렸습니다. 무술(戊戌)년 12월이 지나서 김보정(金寶鼎)ㆍ 송언기(宋彦琦)를 보내고 기해년 6월에는 김겸(金謙)ㆍ 노연(盧演) 등을 보내어 모두 재물을 받들어 배알(拜謁)하고 계속해서 직분을 다하는 마음을 폈더니, 김보정 등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전함에 정성스럽고 곡진하게 답해 주신 은혜를 입어 경사스럽고 기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였습니다.

기해년 12월에는 친제(親弟) 신안공(新安公)을 보내어서 나를 대신하여 몸소 토산물을 가지고 사신으로 궐하(闕下)에 이르게 했었으며, 금년 3월에는 그 전의 사신으로 갔던 노연(盧演)ㆍ 김겸(金謙) 등이 돌아와서 성지를 전하여 보이고 또한 각하께서 우리나라를 힘써 보호하여 주심이 심히 절실했었다는 말에 한없이 감동되어 울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멀리 해돋는 바다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람과 말과 소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 곳인데, 대관인(大官人) 각하께서 곡진히 보우(保佑)하심을 이처럼 지극히 하시니,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맺어진 두터운 인연이 있지 아니하면 그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황제 궐하께 나아가게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더욱더 가엾게 여기셔서 저를 위하여 잘 말씀드려 주소서.

 각하께서는 이미 우리 작은 나라를 염려해 주시니 제가 힘을 내어 직임(職任)을 다하여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고, 매번 보내는 사신의 말을 취하시어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하시고 황제의 은혜를 인도하여 내리게 하여 우리나라를 길게 보호해 주신다면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오나 어찌 감히 은혜를 저버리겠습니까. 변변치 못한 토산물이지만 멀리 정성과 공경을 표시하는 바이오니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mk_c006_v061_197a.gif mk_c006_v061_197b.gif




▣ 김윤만 - 김창 선조님의 귀한 자료입니다.
▣ 김항용 - 이런 귀한 자료가---,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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