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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烈公 송상현의 어머니 안동김씨 --- (익)金承碩의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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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3-15 18:12 조회1,6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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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집 2 (1995, 민족문화추진회)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장유(張維:1587∼1638)의 시문집.





◆송흥복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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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하건대 공의 諱는 興復이요 字는 武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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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조모인 朴氏의 양육을 받았다. 학문에 정진하면서 文詞에 공력을 들여 누차 解額(初試, 鄕試)에서 으뜸을 차지하였으며 교제하는 이들이 모두 이름난 사람이었다. 임자년 司馬試에 입격한 뒤로 여러 차례 大科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급제하지 못하였다.

만년에 어버이가 늙으신 관계로 은혜를 입고 벼슬길에 올라 평릉도 찰방이 되었고, 몇차례 옮겨 다니며 종부시 주부와 양지,용안,평강 등 3곳의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다.



경인년에 송화현감으로 재직중 文科에 뽑혔는데, 이때 공의 나이는 64세요, (▶모친) 全 夫人은 이미 팔순을 넘겼다. 그리고 동래공(▶송상현)의 雅望이 한 시대에 중히 여김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어사중승에 몸담고 있었으므로 당시에 사람들이 기이한 일이라고 일컬었다.



이듬해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왔다가 얼마 뒤에 (▶모친) 전 부인의 상을 당하였다.



또 이듬해에 왜란이 일어나자 공이 상복을 입은 몸으로 병란을 피해 호남 고부군에 寓居하였는데, 피로와 슬픔이 겹쳐 병이 들어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향년 68세였다. 이에 郡 동쪽 泉谷山 艮向(천곡산 간향)의 언덕에 안장하였으니 선영의 예에 따른 것이었다.



부인 贈정부인 安東金氏는 고려의 名臣 ★方慶의 후예로서 忠義衛 ★承碩의 딸이다. 부인은 집안을 잘 다스렸고 婦道가 완벽했는데 나이 71세로 공보다 3년 뒤에 작고하여 공의 묘소에 부장되었다.



슬하에 모두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이 바로 동래공(▶송상현)이고, 차남 남원공 역시 문과를 통해 조정에 진출하여 臺閣의 직책을 거쳐 言事에 걸려 지금의 관직으로 좌천되었다. 사위는 學諭 張彦悟와 생원 韓孝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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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내 - 충렬공의 후손 따님들의 기록도 한번 모아보았으면 하는 주제였습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새로운 연구 방향의 문을 여셨습니다.

▣ 김윤식 - 새로운 연구 감사드리며 기대합니다.

▣ 김윤만 - 임진왜란시 동래부사로 순절하신 송상현을 일컫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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