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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 청석동 연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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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4-03-16 19:25 조회1,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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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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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01.gif 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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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09.gif 청석동 연음기(靑石洞宴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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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갑신일에 명나라 사신 황공(黃公 황영기(黃永奇)) 등이 경사(京師)로 돌아가는데, 시중(侍中)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과, 시중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이 제공들과 함께 그를 전송하기 위해 금교역(金郊驛)까지 왔다가 정오에 되돌아갔다.
이때는 한더위여서 불기운같이 맹렬했는데 아전들이 청석동 시냇가에 막을 쳤으니, 이는 피서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공이 호상(胡床)에 걸터앉자, 물은 그 아래로 흐르고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와서 몸이 편하고 정신이 상쾌하여 마치 오랜 병이 몸에서 떠날 것 같았다. 높은 음악이 울리고 구본에는 격(激)으로 되어 있음. 흐르는 술잔이 겹으로 이르니 제공들이 흐뭇하게 즐겼다. 얼마 안되어 평양백이 문득 말하기를, ‘즐겁기는 즐거우나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했다.
도전이, ‘재상의 직책은 수고로운 것이며, 온갖 책임이 한몸에 모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혀 어떤 본에는 영(縈)자가 영(營)자로 되어 있음. 기운이 답답하고 뜻이 정체(停滯)되니, 아무리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라도 혹 잘못 실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심(裨諶)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계획할 때에는 반드시 들에 나가서주D-001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한가롭고 조용한 중에서 생각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도 막혀 답답한 기운을 풀고, 그 정지되고 멈춘 뜻을 인도하는 데에 반드시 도움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니, 제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평양백은 우연히 손님을 전송하는 일로 여기까지 왔다가, 제공들의 즐거워함을 보고 문득 그 과한 것을 경계시켰으니 이것도 알아 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여기에 쓴다.
   
[주 D-001] 비심(裨諶)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계획할 때에는 반드시 들에 나가서 : 비심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대부(大夫)인데 계획을 잘 세웠다. 그런데 그는 들에 나가서 생각하면 좋은 계책을 얻고, 도시에서 생각하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자산(鄭子産)은 외국과의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 수레를 타고 들에 가서 가부를 결정짓게 하여, 정나라는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는 것이다. 《左傳 襄公 三十一年》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삼봉집에 익원공게서 자주 등장하시는 군요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금교역은 개경의 서북쪽 관문인 모양입니다.
▣ 김주회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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