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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익(1634-1698, 낙서의 孫)과 김세익(?1702-, 김응해의 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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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3-22 20:30 조회1,5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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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04. 3. 21일 청주일원에서 실시한 제6회 정기산행(답사)는 서울, 하남, 안양, 일산, 청주, 대구 등경향 각지에서 많은 분이 참여하시고, 답사일정도 알차고 짜임새 있게 진행된 것 같아 몸은 약간 피곤하지만 아주 뿌듯하고 흐뭇함을 느낍니다.



어제 답사 중에 태영 종친님으로부터 아주 귀한 자료 하나를 전해 받았습니다. 柳惠源(1632-1695)의 시문집 <虛齋集>에 실린 金世翊의 글 여러 편을 어렵게 입수하시고 복사해서 전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가문에는 동명이인의 金世翊 두 분이 있습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고 동명이어서 각종 기록을 찾는데 혼선이 있어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안렴사공파) 김낙서 ---김언---김세익(1634-1698)

(부사공파) 김응해(1588-1666)---김극련---김세익(?1702-)



철원군지에는 응해의 손자 世翊의 生年이 1702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조부 응해의 생년 1588년을 기준으로 1세대를 30년으로 보면 1648년경으로 볼 수 있음. 따라서 낙서의 손자 世翊과 거의 동시대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응해의 손자 세익은 무과 급제, 총융사,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는 등 武班이었고

낙서의 손자 세익은 진사 급제, 문과 급제, 사헌부와 승정원 근무, 전주판관, 경상도관찰사 등 文臣이었음을 기준으로 행적을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1) 강화도 忠烈祠 祭文은 좌승지 金世翊이 지었는데, (註) 김세익은 수군절도사 삼도 통어사 도호부사로 本島에 있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江都古今詩選제2집 (2001, 강화문화원)>의 내용과



2) 경상도관찰사로 1698년에 졸한 金世翊의 <경상도선생안>(상주문화원) 에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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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익(金世翊)

o직 명:통정대부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대구도호부사(通政大夫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大邱都護府使)

o재임기간:1698년(숙종 24년) 무인(戊寅) 9월 16일~1698년(숙종 24년) 무인(戊寅) 10월 23일

졸서(卒逝)

라는 내용을 보면



3) 좌승지 하다가 수군절도사 도호부사를 지내고, 관찰사가 수군절도사 도호부사 등을 겸직하는 등 文臣과 武班의 겸직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렴사공 후손 文臣 세익의 조부 낙서는 사마시(진사) 급제하고 율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아들 1욱, 2언 형제는 사마시를 거쳐 (욱 진사, 언 생원) 둘다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민숙공 김언은 병자호란때 성천부사로서 순절하였고, 아들 2김세보, 3김세필, 4김세익 형제는 모두 사마시 급제하고 (3형제 모두 진사), 4세익은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1. 응해의 손자 武班 세익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7/08 04:35 (from:61.74.254.17) 조회 : 53

시군지순례 26-4.(철원군 : 인물. 유적목록)



철원군지(하)/철원군지증보편찬위원회/1992.

▣ 역사인물(역사인물) pp1841~1904.

○ 金應海(김응해)

선조 21년(1588년)~현종 7년(1666년) 조선 인조 때의 장군. 자는 君瑞(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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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世翊(김세익)

숙종 28년 임오(1702년)에 태어났다. 자는 聖佑(성우), 본관은 안동이며, 어영대

장 김응해의 孫(손)으로 무과에 등제되었으며, 벼슬은 총융사를 역임했다.





■작성자 :김태영 작성일 : 2003/10/24 08:34 (from:211.239.250.199) 조회 : 81

안김 삼도수군통제사 (安金 三道水軍統制使)



35대 김응해(金應海) 1646. 3. ~ 1648. 3. 만기.(副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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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대 김세익(金世翊) 1685. 3. ~ 1686. 6. 병으로 사임.(應海의孫)









2. 낙서의 손자 文臣 세익



■ 디지털한국학

김세익(金世翊)

1634(인조 12)∼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양경(亮卿).

아버지는 성천부사 언($언01),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적병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중림찰방(重林察訪)에 기용되어 관계에 나갔으나, 1681년(숙종 7) 헌납(獻納) 박태손(朴泰遜)으로부터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을 삭거당하였다.

그뒤 다시 서용되었으며 1686년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임시에 시관(試官)으로 영남지방을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궁방(宮房)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으며, 이듬해에도 군병(軍兵)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도내를 순시하던 중 청송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禹仁秀〉





■ 문과방목

김세익(金世翊)

숙종(肅宗)12년(1686년), 정시(庭試) 병과2(丙科2)

>>> 인적사항

생년(生年) 1634년, 갑술

자(字) 량경(亮卿)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언(金<0x3D0C>)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낙서(金洛瑞)

증조부(曾祖父) 김계현(金繼賢)

외조부(外祖父) 이선립(李先立)

처부(妻父) 이후응(李後膺)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54(갑오) 진사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전주판관(全州判官)

품계(品階)

관직(官職) 경상/감사&(慶尙/監司&)





■ 작성자 :김윤식 작성일 : 2003/02/07 20:31 (from:219.241.112.54) 조회 : 116

자료-근역인수에 수록된 선조님 인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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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세익 할아버지는 두 분 이상인 것 같아 어느 파에 속하는지 좀더 확인해야 하나 근역인수에 본관만 기록돼 있어 아직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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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세익(金世翊)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인장1 : 金世翊印

*인장2 : 安東世家





■작성자 :김윤식 작성일 : 2004/01/11 21:30 (from:211.201.0.220) 조회 : 60

상서공(휘 효인) 할아버지의 경상도 안찰사 기록



상서공(휘 효인) 할아버지와 정간공(휘 영후) 할아버지의 경상도 안찰사 및 제찰사 기록, 조선조 선대 할아버지들의 경상도 관찰사 기록입니다. 이외에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는 분들은 확인 중입니다.

자료:<경상도선생안>(상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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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익(金世翊)

o직 명:통정대부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대구도호부사(通政大夫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大邱都護府使)

o재임기간:1698년(숙종 24년) 무인(戊寅) 9월 16일~1698년(숙종 24년) 무인(戊寅) 10월 23일

졸서(卒逝)









3. 조선왕조실록 기록 구분



---○ 표시는 낙서의 손자 文臣 김세익 기록, ▶ 표시는 응해의 손자 武班 김세익 기록인 듯---



1685년 ▶숙종11/01/05(을축) 특지(特旨)로 김세익(金世翊)에게 좌윤(左尹)을 제수(除授)하였다. 이어서 김세익(金世翊)의 사람됨과 그의 활쏘는 기예(技藝)를 칭찬하였다. 그러기에 이 명이 있었다.



1694년 ○숙종20/05/15(임자) 김세익(金世翊)을 지평(持平)으로 삼았다.

○숙종20/09/27(임진) / 부사직 김세익이 영남의 사정을 상소하다. 부사직(副司直) 김세익(金世翊)이 명을 받고 영남(嶺南)에 내려가 선비들을 시험보였다. 돌아와서 상소하여 본도(本道)의 사정을 논의하기를,

○숙종20/09/29(갑오) 김세익(金世翊)을 장령으로



1695년 ○숙종21/05/16(정축) 김세익(金世翊)을 헌납으로,

○숙종21/05/19(경진) 헌납 김세익이 성천의 은점 폐지와 초료의 폐단 등 관서지방의 민폐에 대하여 상소하다. 헌납(獻納) 김세익(金世翊)이 관서(關西)에 가서 선비를 시험보이고 조정에 돌아와 민폐(民弊)를 상소로 진달하였는데, 성천(成川)의 은점(銀店)을 폐지시킬 것과, 황주(黃州)·봉산---

○숙종21/08/02(신묘) 헌납 김세익이 국름을 허비하는 폐단 등에 대해 상소하다

○숙종21/08/14(계묘) 김세익(金世翊)을 집의(執義)로

▶숙종21/10/16(을사) 김세익(金世翊)을 총융사(摠戎使)로

○숙종21/11/06(갑자) 김세익(金世翊)을 사간(司諫)으로



1696년 ○숙종22/01/18(을해) 김세익(金世翊)을 승지(承旨)로

○숙종22/02/21(정미) 동부승지(同副承旨) 김세익(金世翊)

○숙종22/04/30(을묘) 김세익(金世翊)을 승지(承旨)로

▶숙종22/05/20(을해) 좌변 대장 김세익

○숙종22/08/09(임진) 승지 김세익(金世翊)



1697년 ○숙종23/01/19(신미) 승지(承旨) 김세익(金世翊)이 말하기를, “강도(江都)의 모든 산들이 거의 민둥산이 되었으므로, 혹시라도 급박한 일이 있게 되면---

○숙종23/03/25(병자) 예방 승지(禮房承旨) 김세익(金世翊)

○숙종23/03#03(계미) 우승지(右承旨) 김세익(金世翊)

○숙종23/07/22(경자) 김세익(金世翊)을 승지(承旨)로

○숙종23/09/28(을사) 김세익(金世翊)을 충청도 관찰사로

○숙종23/10/01(무신) 배천의 문회 서원에 편액을 내리고 치제하게 하다,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친히 문회 서원(文會書院) 네 자(字)를 써서 승지(承旨) 김세익(金世翊)을 보내어 편액(扁額)을 내리고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숙종23/10/13(경신) 충청도 감사 김세익(金世翊)

○숙종23/10/13(경신) 김세익(金世翊)을 승지(承旨)로



1698년 ○숙종24/02/03(무신) 승지 김세익이 역로의 폐단을 아뢰고 사사로운 역마 이용 엄금을 청하다. ---모든 승지에게 공사(公事)를 가지고 입시(入侍)하여 결재를 받도록 명하였다. 이 때에 승지 김세익(金世翊)이 배천(白川)에 봉사(奉使)하였다가 막 돌아왔는데,

○숙종24/07/15(정해) 김세익(金世翊)을 경상도 관찰사로

○숙종24/10/29(경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세익(金世翊)이 졸(卒)하여 이세재(李世載)로 대신하였다.









▣ 김항용 - 어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또한 세익 선조님의 명쾌한 자료 정리에도 감사드립니다.

▣ 김윤식 - 대부님 상세한 안내 덕분에 보람 찬 하루가 되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 솔내 - 어제 여러가지로 감사했습니다. 늦게 친구분 만나 괜찮으셨나요.?

▣ 김재익 -

▣ 김태영 - 주회아저씨 덕분에 유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두분의 세익선조님의 내용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 김정중 - 잊을수 없는 추억의 하루 였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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