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의 강화도 마니산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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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3-25 23:51 조회1,665회 댓글0건본문
목은 이색의 문집 <목은집>에 보면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을 기행하면서 쓴 시 12수가 실려 있습니다.
이를 보면 이색이 활동하던 1300년대 중후반에 강화도 마니산에는 흥왕사(興王寺), 참성단. 재궁(齋宮), 앙산정(仰山亭), 삼랑성, 전등사 등이 있었고, 선원사(禪源寺)를 지나는 도중에 해운당(海雲堂)이 있는데 조그만 방으로 행촌거사라는 분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화궁주의 원당은 헐리어 없어진 듯 합니다.
정화궁주는 충렬왕비로 충렬왕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면서 박해를 받아 이곳 마니산에 원당을 차리게 된 것 같습니다. 충렬공 65세, 1276년 어떤 사람이 달로화적 석말 천구(石抹天衢)의 숙소에 무명의 투서로 충렬공 무고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화궁주와 충렬공께서 함께 연루되기도 하므로 충렬공과도 어떠한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니산 아래 포구에는 1230년대부터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기까지 40년 가까이 충렬공께서 강화도에서 관직생활을 하시면서 한때 거주하셨다고 강화도 현지에서 전설로 전해오는 해령당(海寧堂)이 있었던 곳이므로 충렬공과 아들 선, 흔, 순 등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앞으로 고려시대 개인 문집에서 강화도나 마니산 관련 기록을 찾다 보면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됩니다.
■ 목은집 1 (2000, 민족문화추진회)
● 마니산 기행 (摩尼山 紀行)
1. 새벽에 흥왕사(興王寺)에 들렀는데, 이날 금탑(金塔)을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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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궁(齋宮)140)에 차운하다. 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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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재궁(齋宮) :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에 제(祭)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재궁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참성단은 옛날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하는데, 조선시대까지도 그대로 이 단(壇)에서 성신(星辰)에 제사했었다.
3. 악부(樂府) 접련화(蝶戀花)에 차운하여 앙산정(仰山亭)에서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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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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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운하여 산 위에서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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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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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산을 내려오면서 관솔불을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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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새벽에 재궁(齋宮)을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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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등사
납극153) 신고 산에 오르니 흥취 절로 맑은데
전등사의 늙은 중이 나의 행차 인도하네
창 밖의 먼 산들은 하늘 끝에 벌여 있고
누각 밑의 긴 바람은 물결을 일으키누나
천문 역법은 예전 오 태사154)가 까마득한데
구름 연기는 삼랑성155)에 참담하기만 하여라
정화궁주의 원당156)은 누가 다시 세울런고
벽기157)에 쌓인 먼지가 내 마음 상하게 하네
154)오태사 : 고려 충렬왕 때의 태사(太史)였던 오윤부(伍允孚)를 가리키는데, 그는 대대로 태사국에 벼슬을 하던 집에서 태어나 충렬왕 때에 판관후서사를 거쳐 뒤에 도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
155)삼랑성 : 전등사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156)정화궁주의 원당 : 당(幢)은 기(旗) 비슷한 것으로 절에는 흔히 석당(石幢)을 세우는데, 이 원당은 곧 충렬왕 원비 정화궁주가 부처 앞에 원하는 바가 있어 공덕(功德)을 바치기 위해 당을 세운 것이다.
10. 선원사(禪源寺)를 거듭 지나다가 도중에 해운당(海雲堂)을 바라보다.
높다란 고운 색채가 남기 빛에 잠기어라
팔부의 용천158)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네
조그만 방이 있어 조용히 앉았을 만하니
저게 바로 행촌거사의 해운당이로세
11. 갑곶(甲串)을 건너 통진현(通津縣)의 인가(人家)에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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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정화궁주와 충렬공 할아버지---- 잘 읽었습니다.
▣ 김태영 -
▣ 김윤식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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