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경주이씨와 안동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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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12-01 18:01 조회1,939회 댓글0건본문
안동김문과 경주이씨와 혼맥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문온공파에서는 특히 돈독한 관계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문온공(척약재 김구용)의 아드님이신 성천도호부사공 휘 명리공의 배위께서
바로 경주이씨 이십니다.
계림군부인에 봉해진 경주이씨할머님의 친정 아버님은 고려말 대 정치가요,
대 문장가이신 이달충선생이십니다.
특히 제정선생과 척약재선조와는 사돈을 떠나 아주 돈독한 친분을 유지 하여
척약재집의 발문도 쓰시고 척약재 잠언도 쓰신것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문온공파 후손이 거의 전부 이 경주이씨 할머니 후손입니다.(99.9%)
또한 척약재(김구용)선조님은 무려 9명의 매부가 계셨는데
그중 둘째 매부가 이장로입니다. 이분이 바로 익제 이제현선생의
아드님이시니, 문온공파와 경주이씨는 서로 외손이 되는 셈이지요.
이달충(李達衷)
?∼1385(우왕 11). 고려말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천45)의 아들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김주회 wrote:
:
: 가족과 함께 하는 보물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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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나하고 같이 사는 장인어른의 외동딸 되는 사람은 경주이가입니다.
:
: 경주이가 하고 우리 선안동김문하고 닿은 인연은 여러 가지 많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 우선 서기 1300년에 충렬공 휘方慶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그 묘지명을 撰하신 경주이씨 이진이라는 분이 계시고,
:
: 그 아들 익재 이제현 이라는 분은 문영공 휘恂 할아버지의 배위되시는 許氏(허공의 따님) 묘지명을 撰하신 분입니다.
:
: 그리고 서기 1602년 충렬공 휘方慶 할아버지의 묘갈을 撰하신 경주이씨 이시발 이라는 분은 우리 가문의 외손이 되시는 분입니다.
:
: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장모님 딸 되는 사람은 "맨날 옛날 책 뒤지고 시골동네 찾아다니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가끔 투덜대지만, 제가 일요일 아침에 모처럼 푹 쉬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오늘은 왜 꾸물거리느냐"고 눈치를 줍니다. 그러면 마지못해 또 姓地순례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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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도에 한 살림 차리기로 약속하고 평소 존경하는 분에게 인사를 갔을 때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 수 많은 사람중에 맺은 소중한 인연이므로, 서로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항상 어여삐 (불쌍히?) 위해 주면서 살아가거라" 하고 일러주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
: 아주 가끔씩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로울땐 아내 품에 기대고 싶습니다. 저자거리 말로 "마누라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의 하나" 라고도 하는데, 저는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아내가 좋습니다.
:
: 우리 집에는 인터넷을 깔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리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한편을 인쇄하여 집에 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읽어 보도록 합니다.
:
:
:
: 도서관에서 옛날 문헌을 뒤지다가 우리 가문의 선조분들과 관련한 새로운 자료를 발견할 때는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들뜨고 뿌듯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보물 단지 모시듯 복사를 해서 품에 가지고 다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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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내일 아침에도 아마 보물을 찾으러 집을 나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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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문온공파에서는 특히 돈독한 관계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문온공(척약재 김구용)의 아드님이신 성천도호부사공 휘 명리공의 배위께서
바로 경주이씨 이십니다.
계림군부인에 봉해진 경주이씨할머님의 친정 아버님은 고려말 대 정치가요,
대 문장가이신 이달충선생이십니다.
특히 제정선생과 척약재선조와는 사돈을 떠나 아주 돈독한 친분을 유지 하여
척약재집의 발문도 쓰시고 척약재 잠언도 쓰신것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문온공파 후손이 거의 전부 이 경주이씨 할머니 후손입니다.(99.9%)
또한 척약재(김구용)선조님은 무려 9명의 매부가 계셨는데
그중 둘째 매부가 이장로입니다. 이분이 바로 익제 이제현선생의
아드님이시니, 문온공파와 경주이씨는 서로 외손이 되는 셈이지요.
이달충(李達衷)
?∼1385(우왕 11). 고려말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천45)의 아들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김주회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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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하는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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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나하고 같이 사는 장인어른의 외동딸 되는 사람은 경주이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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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이가 하고 우리 선안동김문하고 닿은 인연은 여러 가지 많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 우선 서기 1300년에 충렬공 휘方慶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그 묘지명을 撰하신 경주이씨 이진이라는 분이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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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들 익재 이제현 이라는 분은 문영공 휘恂 할아버지의 배위되시는 許氏(허공의 따님) 묘지명을 撰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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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서기 1602년 충렬공 휘方慶 할아버지의 묘갈을 撰하신 경주이씨 이시발 이라는 분은 우리 가문의 외손이 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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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장모님 딸 되는 사람은 "맨날 옛날 책 뒤지고 시골동네 찾아다니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가끔 투덜대지만, 제가 일요일 아침에 모처럼 푹 쉬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오늘은 왜 꾸물거리느냐"고 눈치를 줍니다. 그러면 마지못해 또 姓地순례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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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도에 한 살림 차리기로 약속하고 평소 존경하는 분에게 인사를 갔을 때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 수 많은 사람중에 맺은 소중한 인연이므로, 서로 보배처럼 소중히 여기고, 항상 어여삐 (불쌍히?) 위해 주면서 살아가거라" 하고 일러주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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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가끔씩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로울땐 아내 품에 기대고 싶습니다. 저자거리 말로 "마누라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의 하나" 라고도 하는데, 저는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아내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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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는 인터넷을 깔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리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한편을 인쇄하여 집에 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읽어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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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옛날 문헌을 뒤지다가 우리 가문의 선조분들과 관련한 새로운 자료를 발견할 때는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들뜨고 뿌듯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보물 단지 모시듯 복사를 해서 품에 가지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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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내일 아침에도 아마 보물을 찾으러 집을 나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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