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14---목은 이색 (1328-1396)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04-02 17:23 조회1,680회 댓글0건본문
■ 디지털한국학
이색(李穡)
시대 고려
생몰년 1328-1396(충숙왕15-태조5)
본관 한산(韓山)
자 영숙(穎叔)
호 목은(牧隱)
시호 문정(文靖)
활동분야 문신, 학자
다른 이름
1. 출사 및 관직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진사가 되고, 1348년(충목왕 4)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351년(충정왕 3)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귀국하여 1352년(공민왕 1) 전제(田制)의 개혁, 국방계획, 교육의 진흥, 불교의 억제 등 당면한 여러 정책의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이듬해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1354년 제과(制科)의 회시(會試)에 1등,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 원나라에서 응봉 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 겸국사원편수관(應奉翰林文字承事郎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을 지내고 귀국하여 전리정랑 겸사관편수관 지제교 겸예문응교(典理正郎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藝文應敎)·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원나라에 가서 한림원에 등용되었으며 다음해 귀국하여 이부시랑 한림직학사 겸사관편수관 지제교 겸병부낭중(吏部侍郎翰林直學士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兵部郎中)이 되어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개혁을 건의하여 정방(政房)을 폐지하게 하였다.
1357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어 유학에 의거한 삼년상제도를 건의, 시행하였다. 이어 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지공부사(知工部事)·지예부사(知禮部事) 등을 지내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행할 때 호종하여 1등공신이 되었다.
그뒤 좌승선·지병부사(知兵部事)·우대언·지군부사사(知軍簿司事)·동지춘추관사·보문각과 예문관의 대제학 및 판개성부사 등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이 되어 국학의 중영(重營)과 더불어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을 학관으로 채용하여 신유학의 보급과 성리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봉하여지고, 이듬해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생략---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東文選, 朝鮮金石總覽, 李朝建國의 硏究(李相佰, 乙酉文化社, 1949)
李穡硏究(李銀順, 梨大史苑 4, 1962)
牧隱硏究(孫洛範, 國際大學人文科學硏究所論文集 3, 1975)
李穡의 佛敎觀(安啓賢, 趙明基博士華甲記念佛敎史學論叢, 1965)
李穡(李相殷, 高麗·朝鮮初期의 學者 9人, 1974)
牧隱 李穡과 그의 政治思想에 관한 硏究(朴珠, 曉星女子大學論文集 25, 1982). 〈閔丙河〉
▣ 솔내 -
▣ 김윤식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