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황파를 넘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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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4-05 08:11 조회1,474회 댓글0건본문
○ 6월 9일 흐림 (어장을 향해 사모아를 출항)
8시 30분 출항!
주재원 K씨와 어제 입항한 칠화양호(七和洋號) 선원들과 일순의 이별을 아끼며 제일동화호(第日東和號)는 이차항(二次航)을 위해 사모아를 떠났다.
20여 척이나 모여들었던 일본선들도 이젠 다 떠나가고 한산한 이역의 항구에 출항의 고동소리 길게 메아리칠 때 후장(後檣)에 펄펄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에게 새삼 이곳이 이역임을 느끼게 했다.
사모아를 떠난 우리는 남쪽 어장을 향해 뱃머리를 남남동으로 돌렸다. 기실 남쪽 어장은 파도가 심히 거칠고 해류가 빨라 어로작업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곳이지만, 근간 사모아 근해 일원에 걸쳐 흉어가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어는 정도의 모험을 각오하고 황파(荒波)의 어장을 택했다.
또 한가지는 첫 항해에는 참치어선에 신참인 선원들이 많아 여러가지 곤란이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익숙해져서 작업에 자신을 가지고 사기 왕성했으므로 황파의 어장에 나아가 모험을 해볼 결의를 굳게 했다.
바다는 북동 무역풍이 약간 거세게 불고 백파(白波)가 드문드문 일고 있었으나 항해하기에는 무난했다.
배만 심히 놀지 않을 정도라면 바람이 약간 부는 게 무더위를 잊을 수 있어 좋다.
항구에서 어수선하던 마음도 차라리 바다에 나오면 가라앉고 어떤 초연한 입장에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아지곤 한다. 법석이는 곳을 떠나왔다는 해방감에서일지 모른다. 선원들은 철사줄에 낚시를 매고 줄을 손질하여 어로작업 준비에 착수했다.
저녁 남위 16도선에 이르니 무덥던 바람결에 열기가 한결 누그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갑판에 모여앉은 선원들은 저마다 사모아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망중한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 김주회 - 오늘 아침 10시, 한식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방금 (밤 11시) 집에 돌아와 앉아 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정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웬지 가슴뭉클하고 포근하다고나 할까? 차례 지내고 오후내내 고향산천 거닐다 저녁나절 어둑어둑할때 저수지에서 빙어 잡아서 오랫만에 매운탕 내음에 취하다가 왔습니다. 특히나 제 고향 마을 어느집에 갔다가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했습니다. 거실에 멋들어진 액자가 걸려 있는데, 서봉 김사달 박사의 친필 <溫故知新> 이었습니다. 내일 서울 가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 김항용 - 연재일기 <황파를 넘어>, 잘 읽고 있습니다. 어제(4. 4.일) 새벽 서울에서 출발하여 괴산에 왔습니다. 여름 캠프를 대비하여 답사도 함께 할 목적으로 시험삼아 중부고속도로 오창으로 나와 오창면 모정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증평으로 나와야 함을 알았습니다. 묘소에 이르니 한 아주머니께서 안련사공 신도비 주변을 청소하고 계셨습니다. 여쭈니 재균 대부님이 시동생이시랍니다. 재실과 묘역 일대를 관리하며 재실에서 살고 계시답니다. 잠시 인사드리고 여름 계획도 우선 알려드렸습니다. 월요일(4.5일)에는 대구에서 일가 참배객(버스 한 대 인원)이 온다고 합니다.
▣ 김윤식 -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 -
8시 30분 출항!
주재원 K씨와 어제 입항한 칠화양호(七和洋號) 선원들과 일순의 이별을 아끼며 제일동화호(第日東和號)는 이차항(二次航)을 위해 사모아를 떠났다.
20여 척이나 모여들었던 일본선들도 이젠 다 떠나가고 한산한 이역의 항구에 출항의 고동소리 길게 메아리칠 때 후장(後檣)에 펄펄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에게 새삼 이곳이 이역임을 느끼게 했다.
사모아를 떠난 우리는 남쪽 어장을 향해 뱃머리를 남남동으로 돌렸다. 기실 남쪽 어장은 파도가 심히 거칠고 해류가 빨라 어로작업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곳이지만, 근간 사모아 근해 일원에 걸쳐 흉어가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어는 정도의 모험을 각오하고 황파(荒波)의 어장을 택했다.
또 한가지는 첫 항해에는 참치어선에 신참인 선원들이 많아 여러가지 곤란이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익숙해져서 작업에 자신을 가지고 사기 왕성했으므로 황파의 어장에 나아가 모험을 해볼 결의를 굳게 했다.
바다는 북동 무역풍이 약간 거세게 불고 백파(白波)가 드문드문 일고 있었으나 항해하기에는 무난했다.
배만 심히 놀지 않을 정도라면 바람이 약간 부는 게 무더위를 잊을 수 있어 좋다.
항구에서 어수선하던 마음도 차라리 바다에 나오면 가라앉고 어떤 초연한 입장에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아지곤 한다. 법석이는 곳을 떠나왔다는 해방감에서일지 모른다. 선원들은 철사줄에 낚시를 매고 줄을 손질하여 어로작업 준비에 착수했다.
저녁 남위 16도선에 이르니 무덥던 바람결에 열기가 한결 누그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갑판에 모여앉은 선원들은 저마다 사모아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망중한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 김주회 - 오늘 아침 10시, 한식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방금 (밤 11시) 집에 돌아와 앉아 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정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웬지 가슴뭉클하고 포근하다고나 할까? 차례 지내고 오후내내 고향산천 거닐다 저녁나절 어둑어둑할때 저수지에서 빙어 잡아서 오랫만에 매운탕 내음에 취하다가 왔습니다. 특히나 제 고향 마을 어느집에 갔다가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했습니다. 거실에 멋들어진 액자가 걸려 있는데, 서봉 김사달 박사의 친필 <溫故知新> 이었습니다. 내일 서울 가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 김항용 - 연재일기 <황파를 넘어>, 잘 읽고 있습니다. 어제(4. 4.일) 새벽 서울에서 출발하여 괴산에 왔습니다. 여름 캠프를 대비하여 답사도 함께 할 목적으로 시험삼아 중부고속도로 오창으로 나와 오창면 모정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증평으로 나와야 함을 알았습니다. 묘소에 이르니 한 아주머니께서 안련사공 신도비 주변을 청소하고 계셨습니다. 여쭈니 재균 대부님이 시동생이시랍니다. 재실과 묘역 일대를 관리하며 재실에서 살고 계시답니다. 잠시 인사드리고 여름 계획도 우선 알려드렸습니다. 월요일(4.5일)에는 대구에서 일가 참배객(버스 한 대 인원)이 온다고 합니다.
▣ 김윤식 -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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