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 못에 송연묵 담그어 갈아놓고는 / 硯池浴出起松烟煙 졸고 나서 시 생각하며 책상 가에 기대 있네 / 睡後尋詩倚案邊 현안이 글을 본 것은 병이 있기 때문이요주D-001 / 玄晏看書緣有病 동파가 녹을 생각한 건 토지가 없어서였지주D-002 / 東坡懷祿坐無田 진부한 사람은 자고로 게을러 얼굴에 때가 끼고 / 陳人自古懶膏面 젊은 귀인들은 지금 흔히 매미를 잡는도다 / 新貴卽今多捕蟬 눈에 스치는 영고 성쇠가 본디 이러하나니 / 過眼榮枯本如此 세간에 그 무엇이 모두 그렇지 않으리오 / 世間何物不皆然 온종일 갠 창 아래 향 연기 마주하노니 / 終日晴窓對篆煙 한 봄의 시름겨운 마음이 눈썹 가에 있도다 / 一春愁緖在眉邊 계응은 진작 순채 생각하는 흥취가 있었거니와주D-003 / 季鷹久有思蓴興 원량은 어찌 차조 심을 토지가 없었으리오주D-004 / 元亮那無種秫田 사나운 매야 어찌 바다 제비를 시기하랴만 / 鷹隼豈須猜海嚥 버마재비는 찬 매미를 쫓아 잡거나 말거나 / 螳螂遮莫逐寒蟬 재능 없고 병 많은 것 모두가 가소로우니 / 不才多病俱堪笑 그 누가 양양의 맹호연주D-005을 생각하리오 / 誰憶襄陽孟浩然 이상은 회포를 쓴 것이다. 양류의 연기 뭉게뭉게 봄을 흔들어 대는데 / 靄靄搖春楊柳煙 태양은 숲 밖의 문천 가에 떠 있도다 / 陽浮樹外蚊川邊 삼 년 동안의 봄빛엔 귀밑머리가 희어졌고 / 三年春色白侵鬢 하룻밤의 빗소리엔 온 밭이 푸르러졌네 / 一夜雨聲靑滿田 세상일은 참으로 파초에 덮인 사슴주D-006과 같은데 / 世事眞成覆蕉鹿 생애는 정히 가을을 맞는 매미와 방불하구려 / 生涯政類迎秋蟬 좋은 회포를 백세토록 펼 수가 없으니 / 好懷百歲開不得 언제나 말술을 마시고 바야흐로 탁연해질꼬주D-007 / 斗酒何時方卓然 일만 가호에 연기 나지 않는 게 상심되어라 / 萬戶傷心不起煙 늙은 선비가 무슨 수로 변방을 맑히리오 / 老儒何術可淸邊 한가한 꽃은 미쁨 있어 피어서 이슬 머금고 / 閑花有信開含露 들판의 물은 사람 없이 절로 논에 가득하네 / 野水無人自滿田 전사들은 새 칼집을 닦아 어루만지고 / 戰士拂摩新劍匣 관기들의 옛 전선주D-008은 적막하기만 하구나 / 官娥零落舊鈿蟬 예부터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번복이 많았으니 / 從來理亂多翻覆 천심의 일이 혹 그런 건가를 물어보고 싶네 / 欲問天心事豈然 이상은 봄을 감상(感傷)한 것이다. 묵적의 굴뚝은 해마다 검어지지 않아라 / 墨突年年不着煙 반평생을 서쪽 변새와 남쪽 변방서 지내도다 / 半生西塞又南邊 길이 신진을 따르면 무슨 좋은 일이 있으랴 / 長隨新進有何好 고원을 가려고 하나 한 뙈기 밭도 없네그려 / 欲去故園無寸田 왜 이동을 가지고 지마를 가지런히 보며주D-009 / 等把異同齊指馬 어찌 치힐을 가지고 당선을 계교하는고주D-010 / 豈將癡黠較螳蟬 고치실의 머리와 끝을 찾기 어려운 곳에 / 繰絲頭緖難尋處 한밤중에 속으로 탄식하는 걸 누가 알런고 / 誰識中宵默悵然 종남산 빛은 바람과 연기가 아득하여라 / 終南山色杳風煙 대궐 곁에 있는 장안을 한 번 바라보노니 / 一望長安在日邊 역마는 매양 주인 생각에 우는 것이 애처롭고 / 櫪馬每憐鳴戀主 고향 생각은 오직 전원에 돌아갈 꿈만 있다오 / 鄕心唯有夢歸田 일은 마치 백척 간두의 새알처럼 위태롭고 / 事如百尺竿頭卵 사람은 마치 늦가을 나뭇잎 속의 매미 같구나 / 人似三秋葉底蟬 이 인생 요량하느라 인하여 잠 못 이루고 / 料理此生仍不寐 새벽의 호가 소리 속에 쓸쓸히 앉았노라 / 曉笳聲裏坐蕭然 이상은 고향에 돌아가기를 생각한 것이다.
[주 D-001] 현안이 글을 본 것은 병이 있기 때문이요 : 현안은 진(晉) 나라 때 은사(隱士)인 황보밀(皇甫謐)의 호인데, 그는 평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뒤에는 풍질(風疾)까지 얻어 신음하면서도 끝내 책 읽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晉書 卷五十一》 [주 D-002] 동파가 녹을 생각한 건 토지가 없어서였지 : 동파는 소식(蘇軾)의 호인데, 소식의 차운주개조장관견기시(次韻周開祖長官見寄詩)에 “점차 전사를 꾀하면서도 녹봉에 연연하고, 파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또 물가를 곁하였네[漸謀田舍猶祿 未脫風濤且傍洲].”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十九》 [주 D-003] 계응은 진작 순채 생각하는 흥취가 있었거니와 : 계응은 진(晉) 나라 때 장한(張翰)의 자인데, 그가 낙양(洛陽)에 들어가 벼슬을 하다가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자기 고향 오중(吳中)의 순채국[蓴羹]과 농어회[鱸魚膾]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는, 즉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갔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二》 [주 D-004] 원량은 어찌 차조 심을 토지가 없었으리오 : 원량은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가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이 되었을 때, 현(縣)의 공전(公田)에다 모두 차조[秫]만 심으라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항상 차조술에 취하기만 한다면 족하겠다.” 하였는데, 처자(妻子)들이 메벼[秔] 심기를 굳이 청하자, 이에 1경(頃) 50묘(畝)에는 차조를 심고, 50묘에는 메벼를 심도록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주 D-005] 양양의 맹호연 : 맹호연은 성당(盛唐) 시대의 시인(詩人)인데, 그는 젊어서부터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일찍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장구령(張九齡)의 부름을 받고 형주 종사(荊州從事)가 되었으나, 그후 등창이 나서 신음하다가 죽었다. 《唐書 卷二百三》 [주 D-006] 파초에 덮인 사슴 : 인간의 득실(得失)이 꿈과 같이 덧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정(鄭) 나라의 한 나무꾼이 사슴을 잡아 파초잎으로 가려 놓았다가 이내 그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이를 꿈이라고 여기어, 옆 사람에게 그 꿈 얘기를 한 결과, 옆 사람이 도리어 그 꿈 얘기를 이용하여 그 사슴을 취해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列子 周穆王》 [주 D-007] 언제나 말술을 마시고 바야흐로 탁연해질꼬 : 탁연은 의기(意氣)가 높아짐을 뜻하는데,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초수는 닷 말 술을 마셔야 바야흐로 탁연해져서, 고상하고 웅걸한 담론이 온 좌중을 경탄게 하네[焦遂五斗方卓然 高談雄辯驚四筵].”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 卷二》 [주 D-008] 전선 : 부녀자들의 양쪽 빰에 붙이는 매미 모양의 금화(金花)를 가리킨다. [주 D-009] 왜 이동을 가지고 지마를 가지런히 보며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손가락으로써 손가락의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손가락 아니 것으로써 손가락의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만 못하고, 말로써 말의 말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말 아니 것으로써 말이 말 아님을 깨우지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以馬喩馬之非馬 不苦以非馬喩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한 데서 온 말로, 즉 천지 만물의 사이에 시비 진위(是非眞僞)의 차별을 두지 말고, 모두 상대적으로 보아서 하나로 귀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 D-010] 어찌 치힐을 가지고 당선을 계교하는고 : 목전(目前)의 이익만 탐하여 후환(後患)을 돌보지 않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즉 매미가 나무 위에서 울고 있을 때, 버마재비는 그 뒤에서 매미 잡을 것만 생각하고 황작(黃雀)이 곁에서 저를 쪼려고 하는 것은 모르며, 황작은 또 버마재비만 쪼려 하고 아래에서 탄환(彈丸)으로 저를 쪼려고 하는 것은 모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說苑 正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