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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상죽헌기(霜竹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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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4-04-14 21:13 조회3,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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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7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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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01.gif 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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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09.gif 상죽헌기(霜竹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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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조계종(曹溪宗)의 고승 은봉(隱峯)이 보국사(報國寺)에 머무른 일이 있다. 제자가 있었으니, 각림상인(覺林上人)이라고 한다. 각림상인은 얼굴과 체격이 맑고 파리하며 정신은 얽매이지 않고 밝다. 말을 하면 기운이 깨끗하고 산뜻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듣고서 싫지 않게 하니, 맑고도 맑은 사람이다. 내가 은봉(隱峯)을 찾으면 각림상인은 그의 곁에 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그와 사이가 좋았다.
한번 작별하고 10년을 지나는 동안에 은봉(隱峯)은 세상을 떠나고 상인(上人)은 멀리 여러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내가 은봉을 생각하여도 볼 수 없는 노릇이니, 은봉의 제자인 각림상인과 같은 사람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생각을 어찌 잠시인들 마음에서 잊을 수 있었겠는가. 금년 가을에 상인이 산(山)에서 내려와 내가 보고 기뻐하여 온 종일을 머무르게 하였다. 상인이 책 한권을 꺼내 보이며 말하기를, “나는 나의 마루를 상죽헌(霜竹軒)이라고 이름 짓고 육우(六友) 김비판(金祕判)에게 부탁하여 큰 글씨로 써놓았습니다. 고귀한 사람들에게 시가(詩歌)를 요구하려고 합니다. 그대가 기문을 써주신다면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내가 상인과 친한 관계인 지 오래였다. 나는 초목(草木)에 비유하면 가죽나무나 갈참나무일 뿐이며, 장포나 땅버들일 뿐이다. 어찌 감히 상인의 마루에 기문을 쓰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상인이 이미 나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니 어찌 들은 바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대나무라는 것은 한낱 식물일 뿐이다. 식물이 서리와 찬 이슬을 만나면 그 변함이 급격하다. 꺾어지고 부러지고 떨어져서 다시는 생기(生氣)가 없어진다. 그런데 대나무는 가지의 모습을 고치거나 잎을 바꾸는 일 없이 의젓이 홀로 빼어났다. 그런 까닭에 옛날의 운치 있는 사람과 절개 높은 선비들은 거의 대부분 대나무를 사랑하였다. 차군(此君 대나무)이라고 지목하는 이까지 있었다. 아, 사람이 사물을 대할 때, 보기 좋은 빛깔, 좋은 향기, 듣기 좋은 성음(聲音), 맛 좋은 음식, 사지(四肢)를 편하게 해주는 안일, 이런 것이 양심을 해치고 좀먹는 것이니 어찌 식물에 있어서 서리나 찬 이슬의 정도에 그칠 뿐이겠는가. 이것에서 해를 모면하는 사람이 드물다.
각림상인은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다. 그 이른바 빛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에 일찍이 한번도 생각을 움직이는 적이 없었다. 이제 그의 마루를 상죽헌(霜竹軒)이라고 한 것은 스스로 보는 것이 있어서만이 아니고, 대체로 비슷한 기(氣)가 서로 찾는다는 것인가. 바람이 불거나 혹은 달 밝은 저녁같은 때가 되면 맑은 소리는 쓸쓸하고 파리한 그림자는 성긴데 상인이 마루에 의지하여 앉아서 한산(寒山)의 행밀절고(行密節高)주D-001의 글귀를 외우면서 저 요황(姚黃)이나 위자(魏紫)주D-002가 한때의 부귀를 한껏 뽐내던 것을 본다면 어떠하겠는가. 더욱 상인(上人)의 격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인이 일찍이 절구 한 수(首)를 지어서 말하기를,
서리 맞은 대를 어여쁘게 여기니 / 自憐霜竹淸
절개를 지켜 마음은 항상 태연하도다 / 守節心常泰
길이 허령함을 보전하여 / 永言保虛靈
세속의 밖에서 소요하리라 / 逍遙於物外
하였다. 그의 시(詩)를 보면 또한 그 사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주 D-001] 한산(寒山)의 행밀절고(行密節高) : 한산(寒山)은 당 나라 때의 중이니, 시(詩)를 잘 하는 중이다. 그는 대나무를 노래한 시에 행밀절고(行密節高)라고 칭찬하였다.
[주 D-002] 요황(姚黃)이나 위자(魏紫) : 중국 낙양(洛陽)은 모란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도 요씨(姚氏)의 집 황모란과 위씨(魏氏)의 집 자모란이 유명하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요황, 위자라고 한다.
 



▣ 솔내 - 도은선생의 글인듯... 육우 김비판은 척약재선조님이신듯..
▣ 김윤식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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