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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김익정 등과 년도와 같이 등과 하신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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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04-22 06:19 조회2,4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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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태조 009 05/05/01(정사) / 고시관이 조유인등 33인을 뽑아 올렸는데 김익정을 장원으로 삼다.

임금이 근정전에 앉아서 고시관 조준과 정도전이 뽑은 조유인(曹由仁) 등 33인을 시험보이고,
김익정(金益精)을 제 1등으로 삼았다.

【원전】1 집 91면
【분류】인사-선발

 

김익정 김사준 쌍효자문

  • [소재지]연기군 전의면 양곡리
  • [시 대]조선
     
local_3_14.jpg김익정은 이태조 5년(1396)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삼사를 역임하시고 사헌부대사헌에 재직중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부모의 상을 3년씩 6년간을 시묘하였다.
그후 태종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정사에 진출 이조참판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민훈학강학을 독려하여 민족중흥을 진작하였으며 공은 또한 천성이 겸손하였고 학문이 탁월하고 덕행이 후덕하여 세인들이 충효명문이라 숭배하였으며 세조조에 정려를 명받았다.
  충신명문이 충신을 낳는다고 공의 손자인 수령은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성종조에 좌이공신으로 복창군까지 봉하였으며 호는 문도공 이다. 또한 김사준은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나 벼슬은 물론 과거에도 일체 응하지 않고 오직 효행과 덕을 쌓는데만 노력했다.
부친의 병에 연근이 특효라하여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어 하루같이 드리니 효험이 있어 병이 나을 때까지 복용시켜 주었으며 부친이 75세의 장수를 누리었다.명종조에 효자로 정려를 명하였다.(참고문헌 : 정려기)

 

【성 명】 김익정(金益精)
【생몰년】 ?∼1436(세종 18)
【본 관】 안동(安東)
【자·호】 자비(子斐)
【시 대】 조선 전기
【성 격】 문신

   ?∼1436(세종 18).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비(子斐)로서, 한성윤 김휴(金休)의 아들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태조 5년(1396) 식년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문화부에 배속되었다가 1409년 장령을 지냈다. 이 해 쇄권색(刷卷色)의 별감을 거쳐 직제학 · 우대언을 역임하였고, 세종 즉위 후에 충청 감사 전라 감사 · 경기 감사 등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1422년 승정원 지신사로 내직으로 들어와 대사헌 · 동지 총제를 지내고 인순부 윤 · 경창부 윤을 거쳐 이조 · 예조 · 형조의 참판을 두루 지냈다. 그후 1434년 9월 한성부 윤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경상도 관찰사를 제수받았으나 임지로 떠나기 전에 죽었다. 효성이 지극하고 근검절약의 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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