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황파(荒波)를 넘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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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4-23 17:30 조회1,530회 댓글0건본문
○ 6월 21일 맑음
새벽 4시 스탠바이의 벨이 울리고 다시 작업은 시작되었다. 별들도 졸고 있는 듯한 이른 새벽이나 어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선원들은 모두가 활기에 넘치고 있다.
서남쪽으로 조목이 뻗어 있어 조목 남측에서는 꽤 좋은 어획이 있었으나 북측에서는 마린류가 많았으며 특히 양승이 다 되어갈 무렵엔 100관은 될 듯한 마린이 물어 주낙이 가라앉아 올리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럴 때에 정말 상어떼들이나 동원되어 고기를 좀 뜯어먹어 주었으면 가벼워지고 좋으련만 마린류는 길죽한 부리에 생김생김이 하도 험상스러워 그런지 상어도 좀처럼 마린류는 뜯어먹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또 이 고기는 성질이 몹시 강팔해서 낚시를 물면 심히 몸부림을 쳐 주낙을 수백 미터씩 엉클어 놓으니 자칫하다간 이놈 때문에 주낙을 잃는 일도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란 소설에 노인이 3일을 이 고기에게 끌려다녔다는데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한나절 동안 햇볕을 보았더니 오후부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일몰 후 구름 속에 나타난 별을 보고 서둘러 육분의(六分儀)를 들고 나와 관측하려고 보니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공위성이 날으는 세상에 대양에서 낚시를 드리워 놓고 고기를 잡고 있다니.....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스운 건 그것뿐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드럼씩의 기름을 삼키는 거대한 기관을 달고, 어탐(魚探), 방탐(方探), 레이더, 그리고 무전시설까지 많은 과학기기를 장비하고서 고기를 찾아와선 막상 잡는 방법이란 낚시를 드리워 놓고 고기가 물기를 막연히 기다리는 원시적인 방법이니 이런 일이 또한 우습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낚시에 걸리는 놈은 많은 고기 중에서 사람으로 치면 좀 어수룩한 놈들일 것이다.
이 어수룩한 놈들의 우행을 초조히 기다리는 나는 더 바보일지도 모른다.
⇒ 김재철 선장(1963년 당시)의 <남태평양의 황파(荒波)를 넘어>를 소개하다가, 갑자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싶어져서 한권 구입하여 읽고 있습니다. 읽는 재미가 솔솔 더해 갑니다.
▣ 솔내 -
▣ 김재이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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