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황파(荒波)를 넘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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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4-27 00:17 조회1,465회 댓글0건본문
○ 6월 25일 흐림, 비
한랭전선이 접근해 오고 있어 한때 비가 심히 내렸고 바다도 퍽 거칠어 양승작업이 지연되었다. 일반적으로 바다가 거친 날은 낚시의 상하운동 때문에 어획이 더 양호하건만 오늘은 어획은 신통치 않은데다 주낙만 수없이 끊어졌다. 항장력(抗張力) 300KG의 강한 구라론사의 줄인데도 파도로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인력이 일정치 않아 줄이 늘 끊어지곤 했다.
거세어진 동남풍으로 파도가 밀어칠 때마다 덱크 위로 물은 폭포처럼 쏟아지건만 이제 아무도 파도를 겁내는 이 없이 종일 제자리들을 지켜주었으며 바다가 잔단하면 소화가 잘 안된다는 L씨는 머리부터 파도를 둘러써서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을 푸푸하고 털어 제치면서 오늘 반찬은 잘 장만하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랬던지 오늘 저녁엔 팥밥을 하고 반찬도 한 가지 더 올랐다. 그렇게나 씩씩하고 강인한 나의 선원들이건만 밤이 되고 자정이 지나니 그 파도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선원이 눈에 띈다. 그럴 때면 그들에게 새로운 일을 지시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미안하고 무슨 큰 죄라도 짓고 있는 것만 같다. 고기만 연속 잡혀 올라오면 저들이 졸지 않을 텐데 싶으면 고기가 잘 안 잡힌 것이 더욱 초조하고, 전등 불빛 아래 피로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오직 복종과 근면만을 지상의 미덕으로 훈련받은 이들이기에 밤낮을 가림이 없이 묵묵히 일하건만, 너무도 고된 일을 계속시켜야 하니 마음이 괴로워진다.
그래도 이들 선원 각자가 이 배에 오른 때엔 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뽑힌 이들이지만 과연 오늘의 고생을 예상하고 지원들을 했을까? 또 지금에 후회는 않는지, 이들의 가족이 이런 걸 본다면 무엇을 느낄까? 대학에 갈 학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이 배에 오른 나이 어린 Y군은 그의 일기장에 오늘의 감상을 무어라고 썼을까, 궁금해진다. 대학을 나와 배를 타겠다고 가족들의 의사를 물었더니, 아버지 혼자만 찬성하고 그 외는 모두 반대하더라는 K군, 아마도 그의 어머님이 오늘 같은 정경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만류하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자는 어떤지?
우선 당장 넘어지지 않게 몸의 중심을 가누며 낚싯줄을 다루기에 후회도 환희도 느낄 겨를은 없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촌각이라도 빨리 더 잠을 자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참치 어선의 생활이다..... 일기장을 펼쳤을 때야 아! 오늘이 6.25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기실 이곳은 한국보다 날짜가 하루 늦으니, 한국 날짜론 이미 26일이건만 6.25를 맞은 가슴 아픈 감회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어야 할 텐데.....
▣ 김윤식 -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원양어선의 고독과 어려움을 잘 읽고 있습니다. k군의 일기장과 자신의 일기장이 어떻게 달랐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굳은 의지의 K군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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