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22---성석린(成石璘) <1338~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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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4-27 07:58 조회2,161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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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린(成石璘)
1338(충숙왕 복위 7)~1423(세종 5).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獨谷). 아버지는 부원군 여완(汝完)이다.
1357년(공민왕 6)에 과거에 급제, 국자학유(國子學諭)의 벼슬을 받았으며, 승진하여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이제현(李齊賢)이 국사를 편수하면서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그로 하여금 항상 글을 짓게 하였으며, 예문관(藝文館)의 공봉(供奉), 삼사(三司)의 도사(都事), 전의시(典儀寺)의 주부(注簿) 등을 지냈다.
공민왕도 그를 중용하여, 차자방(箚子房:뒤의 尙瑞院)의 필도치(必#도62赤)로 등용하였으며, 다시 전교시부령(典校寺副令)․지인상서(知印尙書)․예부총랑(禮部摠郎) 등을 역임하였는데, 신돈(辛旽)의 미움을 사서 외관으로 해주목사가 되었으나, 이내 내직으로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삼사좌윤(三司左尹)․밀직사 좌부대언(密直司左副代言)․지신사(知申事)․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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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高麗史, 世宗實錄, 文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人物考. 〈李載#용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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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숭
문혜공 휘 원숭의 初諱(처음의 이름)는 ★정(靖)이다. 1309년(고려 충선왕1년,기유년)에 출생하였다. 문숙공 ★목(牧)의 아들이고, 문순공 ★우기(于器)의 손자이며, 회헌 문성공 ★향(向)의 증손이다. 배위는 진한국대부인 원주원씨(辰韓國大夫人 原州元氏)이며, 첨의평리(僉議評理) ★원선지(元善之)의 딸이다.
슬하에 9남매(3남 6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형조전서를 지낸 경질공 ★원(瑗)이며,
둘째는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휘 ★조동(祖同:양공공파조)이고,
셋째아들은 한림지제고(翰林知製誥)를 지낸 휘 ★수(垂:한림공파조)이다.
장녀는 우사간(右司간) ★김사렴(金士廉)에게 출가하였고,
차녀는 우상시(右常侍)를 지낸 덕양부원군(德陽府院君) ★기전룡(奇田龍)에게 출가,
셋째딸은 창녕부원군 독곡 ★성석린(좌의정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정공)에게,
다음은 전공판서(典工判書) ★김추(金錘)에게 출가했고,
다섯째딸은 좌랑(佐郞) ★김수(金垂)에게 출가했고,
막내딸은 판중추(判中樞) ★유원지(柳元之:좌의정 柳曼殊의 아들)에게 출가하였다.
▣ 김윤식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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