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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효창운동장에 ‘독립·애국열사 국립묘지’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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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4-28 00:04 조회1,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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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4.2.3)

[뉴스브리핑];효창운동장에 ‘독립·애국열사 국립묘지’ 추진

발행일 : 2004-02-03 A6 [종합] 기자/기고자 : 방성수



열린우리당은 2일 백범 김구 선생 등의 묘역인 효창원과 효창운동장을 합쳐 ‘독립·애국 열사 국립묘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동영(鄭東泳)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날 효창원을 방문, 김구 선생 묘지를 참배한 뒤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백범기념사업회 김신 회장은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방문해줘 감사하다”며 김구 선생이 48년 3월 ‘양심건국(良心建國·양심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이라고 쓴 친필휘호 영인본을 정 의장에게 선물했다.



방성수기자 ssbang@chosun.com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11/25 19:47 (from:211.57.153.114) 조회 : 57

Re:서울시내 백범유적지 답사 (1)



<문화재청 홈>

효창공원 (孝昌公園)



종 목 사적 330호

명 칭 효창공원 (孝昌公園)

분 류 독립유적지

면 적 123,307㎡

지정일 1989.06.08

소재지 서울 용산구 효창동,청파동2가및마포구신공덕동,공덕동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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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에는 임시정부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고종 13, 1876∼1949)선생이 민족통일의 한(恨)을 품고 흉탄(兇彈)에 쓰러지자 국민장(國民葬)으로 공원 서북쪽 언덕에 모시어 일대(一帶)가 선열묘역(先烈墓域)으로 화(化)하였다.



그러나 특히 ★김구선생의 묘소(墓所)가 이곳(서울시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그간 민족통일의 방책(方策)등에서 이견(異見)을 보이던 이승만영도하(李承晩領導下)의 당시 집권세력(執權勢力)에서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었고, 그리하여 선열묘소(先烈墓所)를 교외(郊外)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부단(不斷)하였는데, 그 일단(一端)으로 1959년, 봄부터 제 2회 아세아축구대회유치(蹴球大會誘致)를 구실(口實)로 묘소(墓所)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 개설(開設)을 추진(推進)하였다.



이에 독립투사(獨立鬪士) 심산(心山) 김창숙옹(金昌淑翁)등이 중심이 되어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孝昌公園先烈墓所保存會)」가 결성(結成)되고 언론사(言論社)를 비롯한 각계(各界)의 여론(輿論)이 비등(沸騰)하여 묘소이전(墓所移轉)은 보류(保留)되었지만, 효창운동장은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속의 연못 및 섬까지 희생(犧牲)시키고 끝내 1960년에 개설(開設)되었다.



이러는 동안 6·25동란(動亂)으로 인(因)한 자연파손(自然破損)도 있고하여 효창공원, 특히 선열묘소(先烈墓所)일대(一帶)의 훼손(毁損)은 극(極)에 달(達)한 형편이었는데, 5·16혁명이후(革命以後) 또다시 선열묘소의 서오릉(西五陵)(경기도(京畿道) 고양군(高陽郡) 신도읍(神道邑) 용두리(龍頭里))부근(附近) 이전(移轉)이 추진(推進)되었으나 역시 유족(遺族)과 사회각층(社會各層)의 반대로 보류(保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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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

▣ 김윤만 - 당연지사.

▣ 솔내 - 반가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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