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26---김사안(金士安)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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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03 03:03 조회1,761회 댓글0건본문
■ 정간공(김영후) <1292(충렬왕 18)∼1361(공민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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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품은 엄격하고 굳세고 침착하고 신중하였으며 일가 친척과 옛친지들 가운데 군색한 자가 있으면 모두 구제하여 주었다.
그 손자들인 김사안(士安), 김사형(士衡)의 나이 20세를 넘었는데, 어떤 사람이 김영후더러 말하기를 “왜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얻어 주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제가 과연 현명하다면 국가에서 스스로 선발해서 쓸 것이며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관직을 주어서 얻게 하더라고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그의 아들 김천은 관직이 밀직부사에까지 이르렀다.
■ 안렴사공 동생 충강공 김사안(金士安) --- 무후
○?∼1391(공양왕 3).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동. 방경(方慶)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천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사형(士衡)의 형이다.
○영삼사사공(김천)과 삼한국대부인 현풍곽씨 사이의 4남(사겸,사렴,사안,사형) 1녀(허강에 출가)중 3남으로 태어났다.
○1359년 감군위참군사를 지냈고 <1359 처외조부 민사평 묘지명>
○1370년 전 밀직사부사 이었고, 당시 전 종부령 최유경, 박사 이존사 등은 손아래 동서들이었다. <1370 처모 김묘처민씨 묘지명>
○1374년 밀직부사를 지냈고 <1374 처외조모 민사평처김씨(김륜의 따님)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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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항용 -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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