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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27---김사형(金士衡) <1341~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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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03 03:07 조회1,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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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간공(김영후) <1292(충렬왕 18)∼1361(공민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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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품은 엄격하고 굳세고 침착하고 신중하였으며 일가 친척과 옛친지들 가운데 군색한 자가 있으면 모두 구제하여 주었다.

그 손자들인 김사안(士安), 김사형(士衡)의 나이 20세를 넘었는데, 어떤 사람이 김영후더러 말하기를 “왜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얻어 주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제가 과연 현명하다면 국가에서 스스로 선발해서 쓸 것이며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관직을 주어서 얻게 하더라고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그의 아들 김천은 관직이 밀직부사에까지 이르렀다.







■ 안동김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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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에 음보로 연계관직이 되고 감찰규정이 되었다.

공민왕 9년(1360년) 성균관 문과급제하여 고공산랑이 되어 고을에 조세를 공평하게 부과하여 엄하게 다스려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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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김사형(金士衡)

1341~1407(태종 7).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고조는 방경(方慶), 할아버지는 영후(永煦), 아버지는 부지밀직사사 천(#천46)이다.



음보로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뒤 감찰규정(監察糾正)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준(趙浚)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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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韓永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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