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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황파(荒波)를 넘어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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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04 17:39 조회1,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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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1. 남태평양의 황파를 넘어 (원양어로선장의 일지) ---김재철



<사상계>에 두 차례에 나눠 소개된 이 글은 출항 준비를 하는 날부터 만선 후 입항할 때까지 총 45일간의 바다 생활을 보여준다. 당시 45일은 원양어선이 출항했다 다시 돌아오는 1회분의 항차일수이다. 딱딱하고 행정적으로 쓰여지는 항박 일지와는 달리, 저자는 남성들의 풋풋한 힘이 분출되는 현장을 침착한 어조로 그려 보인다.



이 글이 발표되던 60년대는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수산업계에선 각광받던 시절이다. 그러나 진즉 그 속사정을 들려주는 자료는 부족한 형편이었다. 아니, 원양은커녕 연 근해 어업에 관한 사정도 비슷하였다. 바로 그때 이 글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선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출항 전날 밤은 늘 마음이 뒤숭숭하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술이 넘친다. 그들의 마음엔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다. 그런 취중에도 가족들에게 편지쓰는 일을 빼놓지 않는다. 불안과 초조의 한가운데서 어떤 비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들에게 있어 바다는 잠시 올랐다 내리는 중간 기착지라기보다 그들의 전 투혼을 거는 일터이자 농장인 것이다.



삶의 공간이 육지에서 바다로 바뀜에 따라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이해이다. 바다에선 일자(日字)보다 일시(日時)가 더 소중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기 위치를 알아내는 항법 장비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당시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실정은 육분의로 별을 찾고 배의 위치를 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때 별이 뜨는 시각과 별을 보는 시각은 특히 중요하다. 사실 지금의 원양어선이나 상선의 경우는 별을 보고 자기 위치를 찾는다는 얘기가 무척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은 위성항법 장비의 그래픽이 그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생명성에 대해 각별한 신뢰감을 갖게 된다. 한번 출항한 배는 45일간을 그대로 바다에 떠있어야 한다. 이런 축축하고 지루한 나날 속에서 저자의 시선을 끈 것은 뱃전에 낀 이끼였다. 이끼를 보는 순간 저자의 가슴은 이 세상에 생명 이상 강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망막을 통해 가슴으로 받아 읽은 놀라운 생명에의 환희였다. 이끼의 생명성은 그 후로도 그의 삶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파도가 치고 브리지 안이 온통 암흑 천지로 돌변할 때도 생명의 강인성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은 선상 생활을 주시하며 사려깊게 들려주는 저자의 독백에서 더 큰 빛을 발한다. 저자는 바다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고독을 꼽는다. 어로작업으로 붐비는 날은 버겁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입항 날짜가 하루하루 앞당겨진다는 의미에서는 즐거운 날이다. 반면, 한가한 날은 선상의 고독이 시시각각 파고들어 선원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다. 이럴 때일수록 선장으로서 원양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책임과 선원들에 대한 애달픈 마음으로 갈등하는 경우가 보다 빈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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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시기가 오래되어 그 시의성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이 글에 투사된 바다에 대한 저자의 확고한 의지는 크게 돋보인다. 이 글의 저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다와 관련된 일에 항구적으로 종사하고 있다. 이는 일찍이 바다를 통해 자신의 포부를 펼치겠다던 저자의 굳은 의지가 그대로 실현된 것일수 있다. 결국 바다는 그의 삶의 주된 지평이었던 셈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한 존재의 가슴에 깃든 바닷사람들의 삶에 대한 그윽한 그리움과 숱한 생의 파도 속에서도 뱃전에 달라붙던 놀라운 생명성처럼, 저자의 삶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바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 남태평양의 황파를 넘어 (1995, 김재철 외 6명 , 한국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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