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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준, 최종자---최온---최문본 (01) : 최종준(崔宗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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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27 05:57 조회1,8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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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譯 고려사 제9책 (1963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1991 신서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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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崔詵)의 아들은 최종원(崔宗源), 최종준(崔宗峻), 최종자(崔宗梓), 최종번(崔宗蕃)이다. 최종원은 검교태자첨사 로 있었고, 최종자는 좌복야 를 지냈으며, 최종자의 아들은 최온(崔 삼수변빼고溫)이다. 최종번은 승선 으로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최평(崔坪)이었다.



최종준은 신종4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고 고종 때에 벼슬이 여러번 올라 좌승선 으로 되었다. 옛날 제도에는 국자감은 매년 4철의 끝 달에 여섯 번(즉 5일에 한번씩) 지정한 날에 사족의 자제들을 소집하여 론어와 효경으로 시험을 보고 합격한 자를 리부(吏部) 에 보고하면 리부에서는 다시 그들의 세계(世系)를 상고하여 초사(初仕)를 주기로 되었었다.



그런데 최종준이 자기 아들을 시험에 보내려 하니 국자정록(國子正錄)이 지정한 시험 날자가 아니라 하여 듣지 않았는데 최종준이 최우(崔瑀)에게 청탁하고 시험을 받게 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의 행위를 조소하였다. 좌산기 상시 지문하부사 를 력임하고 문하시중 까지 올랐다.



29년에 퇴직하기를 청하니 왕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최 시중은 시종 한결같이 절개를 지켰으며 청렴하게 국가에 복무하여 왔다. 근래 국가에 사고가 많고 의론이 분분하였으나 림기 응변으로 적절한 결단을 내렸으며 국도를 옮기고 왕실을 보위한 공로가 비할 바 없거늘 어찌 상례(常例)를 지킨다 하여 갑자기 은퇴를 허락하겠느냐" 라고 하고 안석과 지팽이(机杖)을 주어 우대하였다.



그는 33년(1246년)에 죽었다. 그는 위인이 엄숙하고 무게가 있으며 말이 적었다. 그러나 가무(歌舞)와 여색(女色)을 즐겼으며 거처와 음식이 지나치게 사치하였다.









▣ 김은회 -

▣ 김윤식 - 대부님, 새로운 연재 기대 큽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솔내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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