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준, 최종자---최온---최문본 (03) : 최문본(崔文本) ?충렬공 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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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30 16:49 조회1,426회 댓글0건본문
■ 北譯 고려사 제9책 (1963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1991 신서원 발행)
최문본은 문음으로 산정도감으로 임명되였다가 견룡행수로 임명되고 벼슬이 여러번 올라 친종장군으로 되였으며 충렬왕 초년에 승선 으로 임명되였다.
응방(鷹坊)을 맡은 오숙부, 방문대 등이 자기가 초안한 선전소식(宣傳消息) 3통을 만들어서 리정 을 통하여 왕에게 건의하기를
"라주 장흥 관내 각 섬에 있는 백성들을 매잡이 작업에 접속시키고 또 공주 부곡양촌의 민가 호수를 모조리 응방에 소속시킬 것과 또 3도 관내 사람들로서 매잡이를 잘 하는 자에 대하여는 인원에 제한 없이 전부 부역을 면제하여 준다." 라고 하였다.
왕이 승선에게 명령하여 그 글을 써 보내여 시행하되 오숙부 등의 지휘에 복종하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최문본이 말하기를
"오숙부 등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학대하여 사욕을 채우고 있으나 안찰사와 수령들이 안전, 신좌선 사건에 혼이 난 후로는 감히 단속하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응방에 소속된 자들을 모두 부역에서 면제한다면 국가에서 부역을 어떻게 징발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숙부 등을 파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소식(消息)으로써 각 도 안찰사에게 지시하더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였으나 왕이 응하지 않았다.
2년(1276년)에 밀직부사 판도판서 벼슬에 있다가 죽으니 나이 44세 이였고 아들은 없었다.
최문본은 몸집이 크고 성질이 점잖으며 무게가 있고 행동이 구차하지 않아서 대신의 체통이 있었다. 일찌기 중국 사신이 와서 그를 보고 어떤 사람에게 묻기를
"귀 국에 이런 인물이 몇 사람이나 있는가?" 라고 하였다.
▣ 김윤식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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