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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난(1728년)과 우리가문 (13끝) --- 金泰謙(김태겸), 金時達(김시달), 김하구(金夏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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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6-02 17:39 조회1,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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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시지, 1987

金泰謙 (김태겸)

안동인으로 별장으로 재직하였는데 이인좌의 난때 소사진에서 전사하였다. 그로 인하여 한성좌윤에 증직되었고 아들 得命에게는 동추를 제수하였다.





■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3/08/14 10:46 (from:211.57.153.114) 조회 : 62

안렴사공파(사렴) 소개자료 08---광산파

<안렴사공파 세보>에 보면 仁男(인남)은 원종공신 충순위, 益昌(익창)은 진사 문과, 石+永(팽)은 통정 행하동현감, 天一(천일)은 무인 생원, 致興(치흥)은 무 어모, 進益(진익)은 효행 증동몽교관, 漢樞(한추), 聲彩(성채), 養淳(양순)은 무과, 養業(양업)은 무과 증시 문천 감목관, 聲贊(성찬)은 무과 훈련주부 첨추, 養老(양노)는 무과 선전관, 養信(양신)은 무 통정 가덕첨사겸 웅천 진수군절도사, ★時達(시달)은 무과 무신 분무공신원종, 昇哲(승철)은 가선 행돈녕부도정 이며-----





■ 김씨의뿌리 (범우사, 1997)

수안김씨

시조 김선(金 )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9세손이다. 김선은 고려후기의 명장인 김방경의 큰아들로 전법판서 상장군으로서 수안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수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수안(遂安)은 황해도 북부에 위치해 있는 지명이다.



김선의 아들 김자(金資)는 도첨의사사를 역임했고

3세손 김위(金爲)는 전리판서를 지냈으며

4세손 김득(金得) 또한 전리판서를 역임했다.



8세손 김순몽(金順蒙)은 조선 중종때 당상관 도제조 통정대부를 지냈고

11세손 김난서(金鸞瑞)는 임진왜란때 김성일과 더불어 전공을 세워 2등 공훈록에 올랐고, 울산부사와 어해장군 훈련원정을 역임했다.

김난서의 아들 김건(金腱)은 이순신의 막하에서 적선을 격파하여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14세손 김도장(金道章)은 호군으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16세손 ★김하구(金夏九)는 영조4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동추부사, 도산서원장을 역임했다.









☞☞☞ 조선조 영조즉위 초기인 1728년에 일어났던 이인좌의 난과 관련하여 당시의 상황과 전개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우리가문 선조님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당시의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과의 역학관계를 많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추후 계속해서 자료가 모아지는 데로 다시한번 살펴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 솔내 - 귀한 테마로 연재해주셨는데.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보고 있습니다. 주제별로 기록을 모으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겁니다.

▣ 상석 -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늘 고마울 따름입니다.

▣ 김윤식 - 계속되는 연재 덕분에 공부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연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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