寓庵集(우암집) 국역화 31--- 화산군의 발자취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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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6-02 17:45 조회1,499회 댓글0건본문
○ 31세 1542년 임인
---봄에 예조좌랑 지제교에 배수되었다. 4월 회재 이언적 공을 南郊에서 전송하였다.
▶예조 :
▶南郊 :
○ 32세(중종38, 1543, 계묘, 가정22)
---경기도사가 되다. 8월, 사간원 헌납이 되다. 9월, 홍문관 부교리가 되다. 12월, 관북어사가 되다.
---가을 7월 독서당에서 독서하면서 이황, 민기 등 여러분과 강 앞에 배를 띄우고 분운하여 시를 짓고, 밤이 깊어서 돌아왔다. 8월 초길에 이황, 정유길, 임형수 등 여러분과 압구정 뒷산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종일토록 경치를 감상하며 놀았다. 10월 이황이 휴가를 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공이 낙생역에까지 이르렀다. 증별시 2장이 있다.
---祖江의 어파장인(?)과 창수한 시가 전한다
▶경기도사로 나가서 양성(안성), 남양(화성), 마전동헌(연천), 강화동헌을 찾아 지은 시가 전한다.
▶祖江 : 통진 북쪽, 김포와 개풍 사이. 한강의 별명 또는 위치에 따른 이름도 다양하여 여러 詩文이나 문서 등에 사용되었는데, 옥수동 앞을 東湖, 서강 앞을 西湖 또는 西江, 용산 앞을 龍湖 또는 龍山江, 김포 북쪽을 강의 어른이란 뜻에서 祖江이라 하였다.
▶사간원 :
▶홍문관 :
▶독서당 :
▶압구정 : 압구정역 인근 현대아파트 자리. 강남구 압구정동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압구정이란 정자가 있었으므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이 부근은 지금은 고층 아파트의 숲을 이루는 서울의 고급 주택가이지만 본래는 한강변을 조망하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낙생역 : ▣ 김항용 - 낙생역은 지금의 판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곳(낙생고등학교 앞)에 있는 다리가 옛날에는 큰 널판지로 된 다리였기에 일명 <널다리>였는데 일제때 지명을 한자화하면서 판교가 됐다고 합니다. 하담 김시양 선조님이 종성으로 유배갈 때 바로 이곳 낙생역에서 하룻밤 쉴 때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 33세(중종39, 1544, 갑진, 가정23)
---2월, 홍문관 교리에 이어 시강원 문학이 되다. 4월, 좌문학이 되다. 사가독서하다. 모친상을 당하다.
---정월 상원에 독서당 에 있었다. 김인후의 증시가 있다. 5월 27일 판서공(공량)의 상을 당하였다. 세자가 송별하고 부의하는 뜻을 내리셨다. 9월 17일 모친 정부인 이씨의 상을 당하였다. 성 안에서 상복을 입었는데, 중추에 이황이 압구정 뒷산에 올랐다가 공을 추억하는 시를 지었다. 10월 20일에 고와 비를 여주 백양동 선영 안 정자 벌에 합장하였다. 1544년 중종이 창경궁 환경전에서 승하하였다.
▶홍문관
▶시강원 :
▶독서당 :
▶여주 백양동 :
▶창경궁 환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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