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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2 --- 조각가 金貞淑(1917-199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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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6-16 17:50 조회1,9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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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작가명 : 김정숙

생몰년도 : 1917.11.10-1991.02.19

출생지 : 서울





작가설명

●<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金貞淑(1917-1991) 5주기 회고전 >

1996.12.06 - 12.30, 모란 갤러리



이경성 (미술평론가, 前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5년 전에 작고한 조각가 金貞淑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글을 쓴 바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1962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가진 작품전에 김환기가 썼던 간단한 글이고

다음으로 1971년 역시 신문회관에서 개최한 작품전에 본인이 <김정숙의 작품세계>라고 쓴 글이 있다. 1978년에는 현대화랑에서 열린 김정숙 조각전에 이일이 <원형태 속의 생명의 율동>이라는 본격적인 평론을 썼고,

1983년 현 대화랑 개인전에서도 역시 이일이 <비상의 형태 속의 정감>이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이일은 그 후 1985년 현대화랑 개인전 때도 마찬 가지로 <날개, 그 영원한 비상>이라는 평문을 썼다. 1991년 2월 19일 그녀가 별세한 후 92년 5월에 1주기전이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되 었는데 이때 본인이 <김정숙 회고전에 부쳐>라는 글을 썼고

서양화가 이대원이 <김정숙 회고전에 즈음하여>라고 짤막하게 쓴 글이 있 다.

그리고 호암갤러리 큐레이터인 한정욱이 <비상에 이르는 추상 에의 도정>이라는 긴 평문을 썼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작가론이나 예술론보다 좀더 부드럽게 그 의 인간에 대한 회상과 그의 작품이 남겨 놓은 조각의 발자취를 살 펴보고자 한다.





부드러운 감성과 자애로운 품성



조각가 김정숙이 살아온 시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정에 얽히 어 살고 인간적인 정취가 가득 찼던 때였다. 남달리 정이 두텁고 인간적이었던 김정숙은 조각가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 족과 사회와 어울려 왔다. 나 자신도 조각가 김정숙으로서 그녀를 먼저 알게 된 것이 아니라 1930년대부터 친지로서 사귀어온 남편 김은우(金恩雨)의 부인으로서 알았기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 서 인간적인 분위기가 더욱 짙었다. 더욱이 김정숙은 만학으로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즉 일찌감치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런 후에야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홍익대학교에 입학 했던 것이다.



자신보다 젊은 교수들에게 수업을 받고 딸,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공부를 했던 그 자체가 남이 갖지 못하는 독특한 분 위기를 형성했다. 만학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잘 참아내 고 오히려 누구보다도 열심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고 노력했 다. 이 만학이라는 사정이 조각가 김정숙을 남보다 진지한 사람으 로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 때 젊은 동급생들이 "마담 조각가"라고 별명을 짓고 교수들도 그 별명을 이름처럼 쓰곤 했다.인간으로서의 김정숙은 이미 아내와 어머니라는 생활의 틀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학생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 같은 분위기를 짙게 풍기곤 했다. 특히 동료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인자한 어머니로서의 태도를 지녔다. 원래 부드러운 감성과 자애로 운 품성을 갖고 있던 탓도 있지만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사 랑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자개로 가득 차 있었다. 이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은 당연히 자신의 작품 세계에 까지도 연장되었다.



조각가 김정숙의 작품이 여인상과 모자상을 중심으로 하는 애 정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결국 그녀의 인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김정숙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을 사랑하듯이 작품 세계에 있어서도 인간 정애의 표시, 특히 여성으로서 모성애의 표 현에 가장 극치를 보여 주었다.





추상화된 날개에 실은 飛翔의 꿈



김정숙은 사람을 대할 때나 작품을 대할 때나 언제나 한결같았 다. 즉 애정 어린 태도로서 대상을 다루었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러 한 태도는 그녀의 몸에 배인 기독교적인 사랑의 실천이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녀의 품성은 늘 가라앉아 있었고 좀처럼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상대를 감싸는 것과 같은 자비 로운 태도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애정에 넘치는 모자상이나 여인상, 그리고 애무하는 주제가 많았다. 이와 같은 조각가 김정숙이 가졌던 주제상 의 일관성은 그녀가 여성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 지만 조각사상 가장 많이 제작되었던 여인상의 문제와도 통하는 것 이다. 여인을 대상으로 한 조각의 역사는 멀리 선사시대 뷜렌도르 프의 비너스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고전시대의 비너스, 중세의 마리 아상, 본격적으로 조각이 독립된 예술의 한 장르로 확립되는 근세 에 이르러 수많은 여인상 특히 로댕과 부르델의 여신상을 거쳐서 20세기의 아르프나 브랑쿠지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은 김정숙의 조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여인상을 바탕으로 조각의 역사를 고찰해 볼 때 김정 숙이 여류 조각가라는 점과 함께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특히 조각가 김정숙이 표현에 있어서 추상적 인 데에 기울어진 것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아르프나 브랑쿠지 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한때 김정숙은 브랑쿠지에 빠져 헤 어나지 못할 정도로 거의 동일한 작품 세계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 중에서 걸작으로 뽑히는 작품들의 대부분이 브랑쿠지적인 추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탐색 끝에 그의 작품 세계는 커다란 변모를 가져오게 된다. 그것은 "비상"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으로서 날개를 소재 로 한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김정숙 조각의 결론처럼 되었지 만 모든 조각가가 바라고 있는 예술의 세계이기도 하다. 사실 조각 이라는 것은 지구 인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물체를, 그 물체가 돌 이건, 나무이건, 금속이건 지구 인력에서 해방시켜 가볍게 하늘로 뜨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늘로 난다는 것은 오랜 꿈이었고 그것 이 과학의 힘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조각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 늘 높이 난다는 것을 최상의 꿈으로 생각했다. 모든 조각가는 무거 운 물체를 가볍게 공란 속에 뜨게 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 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가령 루브르 미술관의 <사모트라케의 여신 상>은 수십 번이나 무거운 바위에다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가볍게 공간 속에 떠있게 한 것이다.



김정숙 역시 물체를 지구 인력에서 해방시켜 하늘 높이 뜨게 하는 꿈을 가졌다. 이것의 실현이 곧 만년의 작품의 부제인 <비상>이다. 날개만을 표시했기 때문에 사모트라케의 여인상과는 표현상 의 차이점을 갖고 있지만 기능적으로 "난다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두 날개의 추상적인 표현이 보다 강조되었다. "비상"은 평생 자비 로운 어머니로서의 애정 어린 여성상을 제작한 그가 하늘 높이 비 상하기를 바랬던 정신적인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은 땅 위에 서 살고 있다. 그러기에 대지는 인간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대지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마치 죽어서 영혼이 훨훨 하늘로 날아가듯이. 조각가 김정숙은 자신이 삶의 방법으로 채택한 조각을 통해 이 꿈을 이루었다. 즉 <비상>이라는 작품을 통 해서 하늘 나라에 올라간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김정숙을 그의 인간, 혹은 조각가로서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김 정숙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자애. 모성애 등을 지닌 사람은 당연 히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고 감화를 준다.교육자로서의 김정숙이 바로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사제지간이 라기보다는 모자지간이라는 느낌을 받는 정감이 김정숙과 그녀의 제자들 사이에서 오고 갔다. 홍익대학교에서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 는 그녀의 모습은 조각 기술의 전달이라는 것보다도 거기에 모인 제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에 그의 제자들은 평생동안 그와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김정숙의 5주기에 즈음하여 그의 추모전을 한다기에 그녀와 같은 직장에서 같은 시절을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그녀에 대한 것을 다시 생각하여 본다. 한없이 자애롭던 그녀의 모습을 일부분이나마 제대로 전달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활동상황>

1 2002 (개인전) 자라나는 날개 국립현대미술관

2 2000 (단체전)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 국립현대미술관

3 1999 (단체전) 근대를 보는 눈 : 조소 국립현대미술관

4 1996.12.06 ~ 12.30 (개인전) 5주기 회고전 모란 미술관

5 1992.05.12 ~ 06.04 (개인전) 회고전 호암 갤러리

6 1992 (단체전) 한국 근대미술 명품전 호암 미술관

7 1990 (단체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8 1990 (단체전) 한국미술 - 오늘의 상황전 예술의전당

9 1989.09.26 ~ 10.05 제9회 개인전 현대 화랑

10 1989 (단체전) 한국 조각 미술대전 한국무역센터

11 1988 (단체전) 한국 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12 1988 (단체전) 기독교미술인협회전 서울 갤러리, 현대 갤러리

13 1987 (단체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4 1987 ~ 1988 (단체전) 한국 현대조각 초대전 춘천 MBC

15 1986 (단체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16 1985.11.05 ~ 11.13 제8회 초대 개인전 미 화랑

17 1985 ~ 1990 (단체전) 서울 미술대전 서울 시립미술관

18 1985 (단체전) 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 1984 ~ 1985 (단체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20 1984 (단체전) 한국 인체 조각전 호암 미술관

21 1983.06.21 ~ 06.30 제7회 초대 개인전 현대 화랑

22 1983 (단체전) 한국 현대미술전 초대전 이태리 밀라노

23 1983 ~ 1990 (단체전) 제1-8회 한국칠보작가협회전 신세계 미술관, 롯데 미술관, 동방플라자 미술관, 서울 갤러리 등

24 1982 (단체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25 1982 제6회 개인전 Asian Modern Art 갤러리 (미국 샌디에고)

26 1978.06.02 ~ 06.10 제5회 개인전 현대 화랑

27 1977 제4회 초대 개인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28 1975.10.06 ~ 10.25 제3회 초대개인전 Heritage 갤러리 (미국 L.A)

29 1974 ~ 1983 (단체전) 제1-9회 한국여류조각가회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회관 등

30 1971.10.18 ~ 10.24 제2회 개인전 신문회관

31 1967 (단체전) 제9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로

32 1964 (단체전) 동경 올림픽전 동경 한국공보관 (일본)

33 1962.09.15 ~ 09.24 제1회 개인전 신문회관 화랑

34 1962 (단체전) 극동 현대미술전 필리핀 마닐라

35 1962 (단체전) 한국 현대미술전 베트남 사이공

36 1960 ~ 1962 (단체전) 현대작가 초대전

37





<경력사항>

1 1987 제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2 1985 ~ 1989 서울 미술대전 선정위원 및 운영위원

3 1983 ~ 1987 한국칠보작가협회 회장

4 1982 ~ 1983 서울시 문화정책 자문위원

5 1982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6 1982 현대미술 초대전 초대작가, 선정위원

7 1975 ~ 1991 한국미술협회 부회장 및 고문

8 1974 ~ 1991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 및 고문

9 1970 한국일보사 주최 미술대상전 심사위원

10 1961 ~ 1964 신인미술상전 심사위원

11 1960 오스트리아 비엔날레 3차 국제조형미술협회 총회 한국미술가 대표

12 1957 ~ 1991 조형미술연구원 원장, 명예교수

13 1957 ~ 1991 홍익대학교 조각과 교수, 조각과 과장, 미술학부장

14 1957 ~ 1981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조각분과 심사위원장, 운영위원





<상훈사항>

1 1985.05 신사임당상 대한주부클럽연합회

2 1984.10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중앙일보사

3 1983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4 1982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5 1982 ~ 1983 교육공로 표창 서울시교육회

6 1976 제25회 국전 초대작가상 문공부

7 1963 오월 문예상 장려상 문교부





<작품보기>



76점











▣ 솔내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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