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烈公과 李承休 03 ---1263년 이승휴의 구관시(求官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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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6-24 23:37 조회1,578회 댓글0건본문
■ 디지털한국학
이승휴(李承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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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3년(원종 4) 이장용(李藏用)·유경(柳璥)·유천우(兪千遇)·원부(元傅)·허공(許珙)·박항(朴恒) 등에게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보내고, 다음해에 이장용과 유경의 천거를 받아 경흥부서기(慶興府書記)에 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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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는 무신집권 말기인 고종39년 (1252년)에 29세의 나이로 최자(보한집 저술, 금학사 영열공 금의 문하)가 주관하는 과거에 급제하지만, 몽고의 침입과 당시의 시대적 여건으로 중앙관계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삼척 두타산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원종5년 (1264년)에 이장용, 유경, 유천우, 원부, 허공, 박항 등에게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보내고, 다음해에 이장용과 유경의 천거를 받아 중앙관계에 진출하는데, 구관시를 보낸 인사들이 모두 충렬공과 매우 친밀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때 보낸 구관시(求官詩)는 <동안거사집>에 실려 있습니다.
*이장용은 충렬공의 장인 박익정의 사돈임 (박익정의 장남 박휘의 장인이 이장용임). 일본정벌에 따른 고려의 고통을 줄이고자 이장용과 충렬공께서 원나라에 여러 차례 다녀 왔음.
*유경은 1276년 충렬공께서 무고로 고문을 받을 때 죄없음을 극력 변호하였음.
*유천우는 상서 김창(金敞)에 의하여 최우(崔瑀)에게 추천되어 정방(政房)에 들어가서 그의 문객이 되었던 사람으로, 충렬공과 갈등도 있었지만 제주에서 삼별초 토벌하심을 하례하는 시를 읊어 시문이 현재 전하고 있음.
*원부는 충렬공 손자 김승용의 장인 원관의 아버지이며, <고려국 첨의찬성사 원공 사대장경기>는 1314년 (충숙왕1) 2월에 강절행성 항주로에 위치한 고려 혜인사 주지 혜복이 민지 찬, 김순 서로 건립한 비문인데, 이의 내용은 첨의찬성사 元瓘(원부의 아들)이 일찍이 첨의중찬 안향(1243-1306)과 함께 대장경 1부를 인출하여 사명산의 천동선찰 *69)에 봉안하였으나 뜻에 차지 않아 다시 1부를 인출하여 혜인사에 봉안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음.
*허공은 1258년(고종 45)에 평장사(平章事) 최자(崔滋)의 문하에서 병과로 급제하였고, 충렬공 셋째아들 김순의 장인임. 원종15년 충렬공을 도독사로 삼고 일본원정용 전함 900척을 건조할때, 추밀원 부사 허공을 전주도 변산에, 좌복사 홍록주를 나주도 천관산에 파견하여 재목을 준비하게 하였다.
박익정---박휘+여(부 이장용)
박익정---딸+김방경
*김방경의 처남(박휘)의 장인, 즉 처부(박익정)의 사돈이 이장용
원부---원관---딸+김승용
김방경---1김선---김승용
허공---딸+김순
김방경---3김순
조충---조계순---조변---딸+유자우---딸+이임종(父 이승휴)
김방경---딸+조변
*김방경의 외손녀(조변 딸) 사위 유자우는 이승휴의 사돈
▣ 김항용 - 충렬공 활동 당시의 인맥관계를 잘 공부했습니다.
▣ 김윤만 -
▣ 김윤식 - 거대한 산줄기를 대하는 기분입니다!!!
▣ 김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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