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미리 가 보는 안사연 여름캠프(8)-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07-01 23:43 조회1,529회 댓글0건본문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3/10/19 11:46 (from:211.57.153.114) 조회 : 59
증평군 도안의 안동김씨
■ 도안면지 (2001.12, 충북학연구소)
p.149
6) 안동김씨
안동김씨는 상락군 이청(利請)이 시조이고, 중시조 방경(方慶)은 정동도원수를 지냈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방경의 셋째 아들 순(恂)에서 이어지는 세계는 그의 현손인 ★익달(益達)에 와서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면서 가세가 크게 일어났다.
다시 익달의 고손자인 수구(壽龜)는 첨정, 그 아들 하룡(夏龍)은 승지, 손자 ★남제(南濟)는 괴산현감과 제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남제는 1475년(성종6)에 태어나 1536년(중종31) 62세로 하세하였고, 묘소는 괴산군 ▲증평 미암리에 있으며, 그의 후손들은 그곳에 살다가 그의 5대손인 극심(克諶)은 ▲음성 술리천(述里川)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안동김씨가 도안지역에 이주한 것은 극심의 아들인 ★용(瑢)때 부터로 보인다. 그는 1615년(광해군7)에 태어나 1678년(현종4)에 하세하여 ▲광덕리1구(청광) 송반암(松盤岩)에 모셔져 있고, 그의 부인은 경주김씨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경주김씨의 집성촌 광덕리2구(모산)에서 부인을 얻어 결혼을 즈음한 인조대에 처가가 있는 마을 바로 근처에 이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증손자인 ★필원(必元)은 1686년(숙종12)에 태어나 1748년(영조24)에 죽었는데, ▲광덕리2구 맞은편 언덕 여옥동(如玉洞) 미륵당에 장사를 지냈다. 그의 자는 여백(汝伯)이고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부인은 남원양씨이다. 현재 광덕리에 있는 묘소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가 필원이다.
그의 아들 ★광려(光礪)는 안악양씨와 혼인하여 ▲음성 수현섬 암곡에서 거주하였고, 흥인(興仁), 흥의(興義), 흥예(興禮), 흥지(興智), 흥년(興年) 5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 중에서 흥의(興義)와 그 후손들이 ▲광덕리에 살았다.
흥년의 손자 ★상혁(相赫)은 효로써 정려를 받았고, 부인 전주이씨 역시 남편의 병에 자신의 다리를 베어 간호하여 한 가문에서 거듭 정려를 하사받았다. 그의 묘소는 후에 ▲사리면 중흥리 도화동으로 이장하였고, 그의 아들 ★시응(時應)은 ▲증평 미암리로 이주하였고, 선응(善應)은 해평윤씨와 혼인하였다. 선응의 아들 규하(奎夏)는 1891년(고종28)에 태어나 1949년에 죽었고 부인은 의성김씨와 곡산연씨로서 묘소는 ▲광덕리 여옥동에 있다.
필원의 묘소 왼쪽 편에는 필원의 손자인 흥의의 무덤과 증손자인 영도(永道)와 고손자인 상복(相福) 상철(相喆)의 묘소가 있고 그 왼쪽 옆에는 규하의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필원의 무덤 오른쪽에는 상복의 아들 종응(鍾應) 등의 무덤이 있다.
현재 이곳에 안동김씨 후손들이 살고 있지 않아 자세한 가계와 내력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안동김씨는 ▲광덕리1구(구계리, 안렴사공파)와 ▲화성리(문온공파, 제학공파), ▲노암리(제학공파), ▲도당리(군사공파) 등에 몇 가구가 살고 있을 뿐이다.
▲광덕리2구(모산) 건너편 여옥동 언덕에 있는 묘소 주인공의 후손들은 ▲사리면 중흥리 도화동(제학공파)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괴산 감물면, 소수면, 사리면 등지에 많이 살면서 유명한 학자이며 명인에는 백곡 金得臣, 임진란의 진주대첩을 이룬 金時敏(충무공)의 충민사, 보광산 위에 있는 김감사(金素) 묘 등도 모두 제학공 후예의 인물이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태도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