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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08---출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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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7-23 16:32 조회1,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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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논문에서 분석한 충렬공(김방경) 할아버지의 출사와 초기관직 생활에 대한 내용을 타이핑해 보았습니다.


▣ <고려후기 김방경의 정치활동과 그 성격> (류선영, 1993, 전남대)

김방경은 1227년(고종14) 16세의 나이로 삼한공신 태사대광 상서우복야였던 ★日兢의 음보로 吏屬 同正직인 양온사 同正으로 관계에 처음 나아갔다. <안동김씨대동보 권1 충렬공행장>
散員으로 처음 입사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고려사 열전 권17 김방경전> 그가 처음 받은 실직이 종9품 대정을 받은 것으로 미루어 맨 처음 양온사 동정직으로 진출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어 그는 무반 실직인 隊正을 받았고 나아가 태자부 牽龍, 散員 겸 식목綠事에 임명되었다. 그는 무관직으로 출발하였으나 문하시중 ★최종준이 그를 예우할 정도로 <고려사 열전 권17 김방경전> 그는 선대의 후광아래 거듭 승진되었다.

이어 그는 서북면 병마綠事, 別將, 郎將 監察御使가 되었다. 1247년(고종34) 36세에 그는 서북면 병마判官으로 승진되었고, 이어 견룡행수, 유섭장군 겸 給事中 御使中丞, 大將軍, 지합문형부사, 金吾衛大將軍 등을 역임하였다. <안동김씨대동보 권1 충렬공행장>

이와 같이 최씨집권기에 그는 백부와 부, 그리고 철원최씨로 재추의 자리를 지켰던 최종준 <김당택, 고려무인정권연구, p100-101> 등의 비호아래 급속히 성장하였던 것이다.


1. 최씨 무인정권과의 관련

김방경이 최초로 관직을 받은 때는 1227년(고종14) 인데, 이때 그의 나이 16세였고 최씨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는 대외적으로 고려와 몽고간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때였다.

1219년(고종6년) 몽고의 공격에 쫓긴 거란인들이 고려의 강동성에 집결하였을 때 고려는 몽고와 연합하여 거란인들을 격파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려와 몽고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었으나 몽고는 고려에 막대한 양의 조공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한 고려측의 반감이 거세어지는 가운데 1225년(고종12) 공물을 걷어 가던 몽고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변에서 살해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몽고가 외교를 단절함에 따라 고려는 몽고의 침입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쟁이 준비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음서로서 동정직을 받았고 이어 무반으로 진출하였다.
그가 관직을 받은 지 5년째인 1231년(고종18) 마침내 고려와 몽고 사이에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몽고의 1차 침입을 맞은 고려는 1232년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하고 장기항전을 준비하였다. <민현구, 몽고군 ·김방경·삼별초>
이로써 고려는 1259년(고종46) 강화가 성립될 때까지 약 30년동안 6차에 걸쳐 몽고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최씨정권의 주도아래 항몽전쟁이 수행되는 이 시기에 김방경은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살펴 보자. 다음 사료를 보자
--중 략---
김방경은 시중 최종준의 사랑을 받아 감찰어사, 서북면 병마판관, 견룡 행수 등으로 주요 무반직에 빠르게 승진하였던 것이다.

최종준은 철원최씨 가문으로 이 가문은 최씨 집권기에 6명의 宰樞를 배출하였으며 <김당택, 고려무인정권연구, p100-101> ★최우는 바로 ★최종준의 조카 사위였다. 또한 최종준은 강화천도를 주도하는 등 최씨정권에서 절대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고려사 열전 권12 최종준전>
이러한 최종준이 그를 돌봐 주고 있을 정도로 그는 백부, 부친에 이어 최씨정권과 결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활동 중에서 최씨 정권과 결탁된 차원의 활동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음의 사료는 그것을 말해 준다.
---중 략---
김방경은 감찰어사로 있으면서 재상의 청탁을 거절하고 국고를 비축하려 하였고, 또 금위대로서 왕실 숙위에 적극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가 비록 최씨정권과 밀착되었지만, 그는 국가재정의 확보와 왕실의 보호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는 왕실을 정점으로 한 국가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국가체제 유지의 노력은 백성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도 살필 수 있다. 몽고병의 4차 침입을 맞았을 때 조정에서는 북계의 백성들을 섬으로 옮기게 조치하였는데 서북면 병마녹사를 지낸 바 있는 김방경은 이때 (고종 35년 3월) 서북면 병마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활동하였다.
---중 략---
그는 백성들을 위해 위도의 식량문제와 식수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피난지에서 백성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는 뒤에 서북면 병마사가 되었는데, 이러한 치적 등으로 그는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얻었으며 뒤에 무고를 당했을 때 서북지역의 후원으로 그것을 벗어나게 되었다. <고려사 열전 권17 김방경전>


최씨정권 아래에서 최씨정권의 핵심인 최종준 등의 비호를 받는 김방경이 최씨정권의 정책에 호응하여 항몽에 노력하였던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김방경은 국가재정과 왕실보호,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안정에도 적극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무인정권에 비판적인 왕실과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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