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여름캠프 답사자료집 3---김소·김구만 묘역과 보광산 봉학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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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7-28 13:13 조회1,354회 댓글0건본문
김소·김구만 묘역과 보광산 봉학사지
(괴산 사리면 사담리 하도마을, 보광산 정상)
1. 김소(金素) 1602(선조25)∼1666(현종7)
字는 지백(知白). 호는 양졸와(養拙窩).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에서 출생. 양덕공(諱 時說)의 장자. 1630년(인조8.29세) 진사급제. 무사참봉(巫仕參奉-종9품), 의금부 금오랑(金吾郞), 호조좌랑(戶曹左郞-정6품)이 되었다. 1635년(인조13,34세) 알성문과 급제. 이듬해 정랑(정5품)이 됨. 그 해(1636년,35세) 후금(청나라)의 전란이 예상되매 공은 문무의 재주를 겸비한 자로서 선발되어 해주판관(海州判官)이 되었다.
1637(인조15.36세) 병자호란에 패하여 소현세자가 볼모로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게 되자 공은 세자와 대군을 청나라까지 모시고 가기도 하였다. 군자감정(軍資監正-정3품), 강릉부사(江陵府使), 함경도병사(咸鏡道兵使-종2품), 종성부사(鍾城府使), 함경남도병사(부친 노환으로 사양)를 거쳐 1644년(인조22) 호조참의(戶曹參議-정3품)가 되었다. 그 해 겨울 성절사(聖節使-중국에 새해 인사로 가던 사신)로 청나라에 갔다가 귀국길에 볼모로 있던 소현세자에게 들려 공금을 아껴 남은 돈으로 세자의 귀국을 위한 말 준비 비용으로 쓰도록 하였다 한다.
경주부윤(慶州府尹-종2품. 부친 노환으로 사양), 형조참의(刑曹參議-정3품. 잠깐 있다가 부친 노환으로 사양), 승정원(承政院) 부승지(副承旨-정3품), 진주목사(晋州牧使)를 거쳐 1648년(인조 26,47세) 충청도 관찰사(觀察使-종2품)가 되었다.
그 후 영흥부사(永興府使), 승지(承旨), 형조참의, 호조참의, 황해도관찰사, 광주목사(光州牧使), 장단부사(長湍府使), 판결사(判決使), 양주목사(陽州牧使)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현종 7)에 몰. 수(壽) 65세.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고 묘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하도마을 보광산 頂 계좌(癸坐)이다.
*유물 : 白牌(진사급제)1매, 紅牌(문과급제)1매, 諭旨(충청도 관찰사, 충청수사) 2매.
<묘갈> 忠淸道觀察使 養拙窩 金素 1602~1666의 墓碣은 肅宗 5년(1679)에 沙梨面 沙潭里 普光山에 있는 그의 묘소 앞에 세워졌다고 전하는데 현재 비석은 없다. 碑文은 아들인 金龜萬이 짓고 글씨는 재종질인 金鳳至가 썼다.
<감사공 생가 거주지 조사>
1. 조사, 발견 일시 : 1987. 7. 27. 2. 조사자 : 김항용(제). 3. 장소 :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2구 105번지 (현 정원사 절 일대)
4. 고증 자료 : <괴산군지>(1990. 9. 30. 괴산군지 편찬 위원회. 1055P)--"괴산군 사리면 하도에서 출생 " 5. 현지 고증인 : 孫錫福(사담 2구 103번지 거주. 당시 90세)
***감사공 생가 유물인 주춧돌 (현재 사담 2구의 손목삼, 손근영씨 집 사이의 담장 주춧돌로 쓰이고 있는데 현재 약 9개 정도가 남아 있다. 한 개 당 30Cm(가로), 30Cm(세로), 65Cm(높이)의 크기이다)
***일부는 절(정원사-태고종,주지승 고진수)이고 일부는 상기 밭 자리. 사리면 사담리 2구 105번지 일대). 가로(80m), 세로(30m)>
<관찰사 不忘碑> 1649년(인조 27년) 경에 충남 공주군 공주 공산성에 세웠던 것인데 훼손 분실됨. 이에 1992년 안동김씨 공주문중회에서 주관하여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문중 역대 선조 4위 관찰사 불망비를 세움. 우로부터-金悌甲, 金億齡, 金時獻, 金素
2. 김구만(金龜萬) 1632년(인조 10)--1699년(숙종 25).
자(字)는 元瑞(원서),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荷島) 출생. 1666(현종7년)에 진사(進士)급제, 1677년(숙종 3) 강서현령(江西縣令), 1678년(숙종 4) 문과 급제 후 지평(持平),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1689년(숙종 15)에 경기우방어사 장단부사(京畿右防御使 長湍府使), 1693년(숙종 19)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1694년(숙종 20) 좌승지(左丞旨)에 올랐고, 1699년(숙종 25) 68세로 몰(歿)하였다.
3. 보광산 봉학사지 5층석탑, 보광사
1) 현 보광사 뒷편에 있는 봉학사지 오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29호
이 탑은 보광사 뒷편의 옛 절터에 남아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가 없어진 채 탑 몸돌 부분이 올라가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초층을 제외하고 2층부터는 탑 몸돌과 지붕 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체감비율이 약해서 경쾌한 맛이 없다. 1966년 2층 지붕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사리함과 청동불상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에서 <봉학산 봉학사>라는 시주문이 발견되었다.
<묵서기지본(墨書記紙本)>
1. 발견시기:1967. 6. 2. 장소 : 2층 옥개석의 원형 사리공 속 3. 발견자 : 禹英奎(사리면 거주자) 4. 크기:22.7cm(가로), 12cm(세로) 5. 현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등록번호-국립박물관 신1819번). 6.사진 입수경위 : 1987. 9. 30. 후배(안병찬. 당시 국립박물관 근무)로부터. 7.기록 내용 : "--支那六月 二十二日---大施主 孝宗妻子奇德" : 효종은 중국 송나라때의 왕으로 이 탑의 건립연대는 1163년(고려 의종 17)--1189(고려 명종 19) 사이로 본다.
<소상(小像)>
1. 발견시기:1967. 6. 2. 장소 : 2층 옥개석의 원형 사리공(舍利孔. 지름 11cm) 속에서 3구의 소상과 묵서기지본(墨書記紙本)이 들어 있는 청동제 방형감(靑銅製 方形龕)이 발견됨. 3. 발견자 : 禹英奎(사리면 거주자. 박물관에 신고) 4. 크기:4.1cm(길이), 2.2cm(높이), 1.5cm(두께) 5. 현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등록번호-국립박물관 신1819번). 6.사진 입수경위 : 1987. 9. 30. 후배(안병찬. 당시 국립박물관 근무)로부터. 7.제작연대 : 1163년(고려 의종 17)--1189(고려 명종 19) 사이로 본다.
2)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槐山鳳鶴寺址 石造如來坐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호
이 불상은 불두(佛頭)와 왼 팔목 등을 보수하였으나 보수부분을 제외하면 잘 보존되어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불상으로 높이 95Cm이며, 신체에 비하여 큰 얼굴을 약간 숙이고 있다. 굴곡이 거의 없는 네모진 상체에 띠주름 같은 삼도(三道) 표현, 평면적이고 네모진 형태,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형식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세부 수법을 보면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광산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35년부터 보광사 대웅전에 봉안하여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3) 보광사
1941년 건립. 태고종. 1988. 개축한 모습. 주지-익원공파 金泰國. 2000년 부임. 043)833-4538)
4) 보광사 우측에 있는 안동김공 휘 현(炫)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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