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화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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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8-03 11:51 조회1,379회 댓글0건본문
지금쯤 안사연 여름 켐프에서는 서봉박사(김사달)님의 묵적비를 답사하고 있습니다.
서봉박사님의 고향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내고향 華陽洞
나의 향리는 바다가 없기로 유명한 충북이다. 충북에서도 두메산골로 이름난 괴산(槐山)
청천(靑天)이란 곳이다. 주위가 왼통 첩첩 산악으로만 둘려싸인 내륙지인 까닭에 바다하고는
인연이 멀고 여름철이면 으레 개울가나 나무그늘을 찾게 마련이다.
비록 바다 없는 산간벽지이긴 하지만 소백산맥 푸른 굽이를 뒤로 하고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達川)
상류의 박대천(博大川)이 남쪽으로 꿰뚫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을이다. 남으로 바깥속리
(外俗離)를 바라보고 조선팔경(朝鮮八景)이라 일컬었던 화양동(華陽洞)을 끼고 있다.
예부터 괴산의 지명에 괴주(槐州). 괴양(槐壤). 괴산 등 느티나무<槐>자가 붙어 내려왔다.
곧 느티나무 고을이란 뜻이다. 어느 마을에건 수 백년이나 묵은 아름드리 우람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씩 서 있는가 하면 울울창창한 숲을 이룬 곳도 있다. 여름철이면 그 우거진 그늘이
마을사람들의 다시없는 휴식처로 보금자리 구실을 한다.
농부들의 땀을 식히고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인가 하면, 촌로들에겐 장기를 두거나 낮잠을 즐기는
안식처요 아이들에겐 유일한 놀이터가 된다. 수염이 허연 노인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 큰 대(大)자로
벌렁 누워 배꼽을 드러내어놓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모습은 마치 신선도를 방불케 한다.
청천에서 송면리(松面里)를 향해 약 9킬로 지점에서 3킬로에 걸쳐 화양천(華陽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양쪽으로 펼쳐진 일련의 경승지를 가리켜 화양구곡(華陽九曲) 이라 한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보면 그곳을 “백색(白色)이 반타(盤陀)하고 청천(淸川)이 횡포(橫鋪)하여
동학수야(洞壑雖夜)나 광랑여주(光朗如晝)라”했다. 한줌의 흙이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백설과도 같이 흰 모래밭과 옥 같은 반석 사이로 맑고 푸른 옥류(玉流)가 혹은 굽이치고 혹은 흰
눈송이와도 같이 비말(飛沫)을 튀기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푸르디푸른 여울목에 괴목(槐木)과
청송(靑松)의 진록(眞綠)의 녹음이 드리운 운치는 완연히 한 폭의 그윽한 산수화 그대로다.
이 여울에 발을 담고 거니노라면 자신이 속세에 발을 디딘 범인이란 것을 망연히 잊게 한다.
일찍이 인조에서 숙종대에 걸쳐 사조(四朝)나 역임한 거유(巨儒)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이 산수를
사랑하여 은거하던 중 소명(昭命)에 의해 나아갔고, 치사(致仕)하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암선생과 관련된 유적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양구곡의 제1곡을 경천벽(擎天壁)이라 한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서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라고나 할까. 마치 신의 조화로 깎고 다듬은 듯이 기묘한 층암절벽을 이루어 길게 뻗치고
높이 솟은 것이 하늘을 떠받친 듯하다. 제2곡은 경천벽에서 약 4백미터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 사이에 맑은 못(沼澤)이 이루어져 있다. 이를 운영담(雲影潭)이라 한다. 운영담은 주자시
(朱子詩)의 <天光雲影>에서 위한 것이다.
제3곡에는 소위 읍궁암(泣弓巖)이라는 것이 있다. 운영담 남쪽 게곡 위의 희고 둥근 큰 바위를
말하는데 송우암 선생이 효종대왕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그 바위 위에서 통곡을 하였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제4곡에는 금사담(金沙潭)이 있다. 읍궁암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계곡을 건너면
맑고 깨끗한 못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금사담이다. 금사담을 지나노라면 제5곡의 첨성대(瞻星臺)가
보인다. 낙영산(落影山) 기슭에 높이 솟은 절벽이다. 제6곡에는 능운대(凌雲臺)가 있다. 금사담
아래로 환장암(煥章庵)을 지나면 큰 바위가 개울가에 가파르게 우뚝 솟아 주위를 압도한다.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하여 능운대라 한다.
제7곡에는 와룡암(臥龍巖)이 있다. 첨성대 밑 개울을 따라 남동쪽으로 1킬로쯤 지나면 궁석(穹石)이
계변에 가로질러 있는데 전체 형상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와룡암 계변에서 동쪽으로
조금 지나면 제8곡의 학소대(鶴巢臺)가 보인다. 이 학소대 근처에는 낙락장송이 옛 풍상을 간직한 채
표연히 서 있고, 이곳에 청학(靑鶴)이 깃들었다는 연유로 학소대란 이름이 붙여졌다.
학소대를 지나면 제9곡의 파곶반(巴串盤)이 널찍이 펼쳐진다. 개울을 가로지른 희고 넓은 평평한
암석이 마치 옥반(玉盤)과도 같이 깔려 있다. 화양 절경을 찾아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이 누구나 이
석반 위를 거친다 하여 파곶(巴串)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화양구곡 중 제1곡인 경천벽 옆에 <華陽洞門>이라 씌어진 넉자와, 제4곡인 금사담 바위 위에
<蒼梧雲斷 武夷山空>, 그리고 제5곡인 첨성대 밑의 <大明天地 崇禎日月> 등의 휘호각자(揮毫刻字)는
모두 송우암 선생의 필적이다.
금사담 위에는 우암선생이 노경(老境)에 낙향하여 은거 소일하였던 암서재(巖棲齋)가 있는데 뜰과
주위의 기암 사이에 선생이 손수 심어서 가꾼 노송이 지금도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또 맑고 푸를
물결이 암서재 밑을 굽이쳐 흐르는 광경과 옆으로 펼쳐진 절벽이 또한 가관이다.
일끼기 조선 초엽의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 선생이 화양동에 청유(淸遊)하면서 ----
<靑入桃源日載陽 巖花澗草發天香 洞仙此日遺蹤香 呼我爲仙亦不妨>등 여러 수의 명시를 남겼고,
송우암. 권상하(權尙夏)선생의 시도 수심여 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화양동에서 다시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불과 2킬로도 못가서 녹음에 둘러싸인 선유동(仙遊洞)
일대와 와룡폭포의 절경이 전개된다. 이 선유동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를 살펴보면, 이퇴계 선생이
칠송정(七松亭)에 있는 친척댁을 찾아왔다가 근방의 산수가 절묘하고 풍광(風光)이 명미(明媚)함을
못내 사랑하여 무려 9개월 동안이나 소요청상(逍遙淸賞)하면서 그같은 절경은 미상불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 분명하다 하여 선유동이라 명명하고 9곡의 이름--1.仙遊洞門 2. 擎天巖 3. 鶴巢巖
4. 鍊丹爐 5. 臥龍瀑 6. 爛柯臺 7. 碁局巖 8. 龜巖 9. 隱仙巖----을 지어 절벽 바위에마다 각자
(刻字)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내 고장은 산과 바위와 느티나무, 그리고 구슬같이 맑고 푸른 개울물이 흐르는 천혜의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 석천(石川) 여울목의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땀을 씻으며 녹음가린 계변 바위
아래서 한껏 납량(納涼)을 즐기는 멋이란 생각만 하여도 신이 나고 답답한 가슴이 후련히 트이는
것만 같다.
서봉박사님의 고향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내고향 華陽洞
나의 향리는 바다가 없기로 유명한 충북이다. 충북에서도 두메산골로 이름난 괴산(槐山)
청천(靑天)이란 곳이다. 주위가 왼통 첩첩 산악으로만 둘려싸인 내륙지인 까닭에 바다하고는
인연이 멀고 여름철이면 으레 개울가나 나무그늘을 찾게 마련이다.
비록 바다 없는 산간벽지이긴 하지만 소백산맥 푸른 굽이를 뒤로 하고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達川)
상류의 박대천(博大川)이 남쪽으로 꿰뚫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을이다. 남으로 바깥속리
(外俗離)를 바라보고 조선팔경(朝鮮八景)이라 일컬었던 화양동(華陽洞)을 끼고 있다.
예부터 괴산의 지명에 괴주(槐州). 괴양(槐壤). 괴산 등 느티나무<槐>자가 붙어 내려왔다.
곧 느티나무 고을이란 뜻이다. 어느 마을에건 수 백년이나 묵은 아름드리 우람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씩 서 있는가 하면 울울창창한 숲을 이룬 곳도 있다. 여름철이면 그 우거진 그늘이
마을사람들의 다시없는 휴식처로 보금자리 구실을 한다.
농부들의 땀을 식히고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인가 하면, 촌로들에겐 장기를 두거나 낮잠을 즐기는
안식처요 아이들에겐 유일한 놀이터가 된다. 수염이 허연 노인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 큰 대(大)자로
벌렁 누워 배꼽을 드러내어놓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모습은 마치 신선도를 방불케 한다.
청천에서 송면리(松面里)를 향해 약 9킬로 지점에서 3킬로에 걸쳐 화양천(華陽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양쪽으로 펼쳐진 일련의 경승지를 가리켜 화양구곡(華陽九曲) 이라 한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보면 그곳을 “백색(白色)이 반타(盤陀)하고 청천(淸川)이 횡포(橫鋪)하여
동학수야(洞壑雖夜)나 광랑여주(光朗如晝)라”했다. 한줌의 흙이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백설과도 같이 흰 모래밭과 옥 같은 반석 사이로 맑고 푸른 옥류(玉流)가 혹은 굽이치고 혹은 흰
눈송이와도 같이 비말(飛沫)을 튀기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푸르디푸른 여울목에 괴목(槐木)과
청송(靑松)의 진록(眞綠)의 녹음이 드리운 운치는 완연히 한 폭의 그윽한 산수화 그대로다.
이 여울에 발을 담고 거니노라면 자신이 속세에 발을 디딘 범인이란 것을 망연히 잊게 한다.
일찍이 인조에서 숙종대에 걸쳐 사조(四朝)나 역임한 거유(巨儒)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이 산수를
사랑하여 은거하던 중 소명(昭命)에 의해 나아갔고, 치사(致仕)하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암선생과 관련된 유적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양구곡의 제1곡을 경천벽(擎天壁)이라 한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서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라고나 할까. 마치 신의 조화로 깎고 다듬은 듯이 기묘한 층암절벽을 이루어 길게 뻗치고
높이 솟은 것이 하늘을 떠받친 듯하다. 제2곡은 경천벽에서 약 4백미터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곡 사이에 맑은 못(沼澤)이 이루어져 있다. 이를 운영담(雲影潭)이라 한다. 운영담은 주자시
(朱子詩)의 <天光雲影>에서 위한 것이다.
제3곡에는 소위 읍궁암(泣弓巖)이라는 것이 있다. 운영담 남쪽 게곡 위의 희고 둥근 큰 바위를
말하는데 송우암 선생이 효종대왕의 승하를 슬퍼하여 매일 그 바위 위에서 통곡을 하였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제4곡에는 금사담(金沙潭)이 있다. 읍궁암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계곡을 건너면
맑고 깨끗한 못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금사담이다. 금사담을 지나노라면 제5곡의 첨성대(瞻星臺)가
보인다. 낙영산(落影山) 기슭에 높이 솟은 절벽이다. 제6곡에는 능운대(凌雲臺)가 있다. 금사담
아래로 환장암(煥章庵)을 지나면 큰 바위가 개울가에 가파르게 우뚝 솟아 주위를 압도한다.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하여 능운대라 한다.
제7곡에는 와룡암(臥龍巖)이 있다. 첨성대 밑 개울을 따라 남동쪽으로 1킬로쯤 지나면 궁석(穹石)이
계변에 가로질러 있는데 전체 형상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와룡암 계변에서 동쪽으로
조금 지나면 제8곡의 학소대(鶴巢臺)가 보인다. 이 학소대 근처에는 낙락장송이 옛 풍상을 간직한 채
표연히 서 있고, 이곳에 청학(靑鶴)이 깃들었다는 연유로 학소대란 이름이 붙여졌다.
학소대를 지나면 제9곡의 파곶반(巴串盤)이 널찍이 펼쳐진다. 개울을 가로지른 희고 넓은 평평한
암석이 마치 옥반(玉盤)과도 같이 깔려 있다. 화양 절경을 찾아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이 누구나 이
석반 위를 거친다 하여 파곶(巴串)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화양구곡 중 제1곡인 경천벽 옆에 <華陽洞門>이라 씌어진 넉자와, 제4곡인 금사담 바위 위에
<蒼梧雲斷 武夷山空>, 그리고 제5곡인 첨성대 밑의 <大明天地 崇禎日月> 등의 휘호각자(揮毫刻字)는
모두 송우암 선생의 필적이다.
금사담 위에는 우암선생이 노경(老境)에 낙향하여 은거 소일하였던 암서재(巖棲齋)가 있는데 뜰과
주위의 기암 사이에 선생이 손수 심어서 가꾼 노송이 지금도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또 맑고 푸를
물결이 암서재 밑을 굽이쳐 흐르는 광경과 옆으로 펼쳐진 절벽이 또한 가관이다.
일끼기 조선 초엽의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 선생이 화양동에 청유(淸遊)하면서 ----
<靑入桃源日載陽 巖花澗草發天香 洞仙此日遺蹤香 呼我爲仙亦不妨>등 여러 수의 명시를 남겼고,
송우암. 권상하(權尙夏)선생의 시도 수심여 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화양동에서 다시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불과 2킬로도 못가서 녹음에 둘러싸인 선유동(仙遊洞)
일대와 와룡폭포의 절경이 전개된다. 이 선유동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를 살펴보면, 이퇴계 선생이
칠송정(七松亭)에 있는 친척댁을 찾아왔다가 근방의 산수가 절묘하고 풍광(風光)이 명미(明媚)함을
못내 사랑하여 무려 9개월 동안이나 소요청상(逍遙淸賞)하면서 그같은 절경은 미상불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 분명하다 하여 선유동이라 명명하고 9곡의 이름--1.仙遊洞門 2. 擎天巖 3. 鶴巢巖
4. 鍊丹爐 5. 臥龍瀑 6. 爛柯臺 7. 碁局巖 8. 龜巖 9. 隱仙巖----을 지어 절벽 바위에마다 각자
(刻字)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내 고장은 산과 바위와 느티나무, 그리고 구슬같이 맑고 푸른 개울물이 흐르는 천혜의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 석천(石川) 여울목의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땀을 씻으며 녹음가린 계변 바위
아래서 한껏 납량(納涼)을 즐기는 멋이란 생각만 하여도 신이 나고 답답한 가슴이 후련히 트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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