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48---倭寇의 본거지 伊萬里灣과 鷹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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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8-06 23:35 조회1,476회 댓글0건본문
■ 월간조선 2004년 1월호
倭寇의 본거지 伊萬里灣과 鷹島
이키島를 초토화시킨 麗蒙연합군은 이어 肥前(히젠: 지금의 나가사키縣) 마쓰우라(松浦)郡의 다카시마(鷹島)를 습격했다. 일본 측 기록인 「日蓮註畵讚」(일련주화찬)에는 『肥前國 松浦黨 수백인이 戰死했다. 이 섬의 백성과 남녀가 당했던 참사는 對馬와 같다』고 했다.
마쓰우라(松浦)는 다카시마 對岸의 지역이다. 그런데 왜 유별나게 그 지역의 部隊名에만 「黨」(도우)字를 붙인 것일까? 바로 이 점을 필자는 평소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松浦黨」에 대한 필자의 의문은 다카시마에 가서야 비로소 풀리게 된다.
松浦黨은 「海商집단」을 자처했으나 실은 한반도 연안에 출몰하여 갖은 약탈행위를 일삼던 倭寇(왜구)의 중심세력이었다. 다카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서 「松浦黨硏究」라는 논문집을 잠시 읽어 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松浦黨」이라고 불리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고 한다. 松浦黨이라면 바로 악명 높은 倭寇가 聯想(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史書(高麗史)에서 「倭寇」라는 존재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高宗 10년(1223)이었다. 倭寇는 대개 일본 사회의 변동으로 몰락한 무사들이 주동이 되었다. 이들의 노략질은 갈수록 격화되어 고려 말기에는 우리나라 동·남 연안뿐만 아니라 江華·喬洞·禮成江口로 출몰하여 수도권까지 위협하게 된다. 다카시마는 倭寇의 본거지 이마리(伊萬里)灣과 松浦港의 입구에 위치, 外海의 풍랑을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11월29일 오전 8시에 필자는 다카시마를 향해 숙소인 하카타 그린호텔을 나섰다. 하카타驛에서 메이노하마까지는 지하철, 메이노하마에서 가라쓰(唐津)까지는 철도, 가라쓰에서 다카시마行 연락선의 부두가 있는 호시노(星賀)港까지는 택시(요금 4500엔), 호시노港에서 다카시마의 히비(日比)港까지는 연락선(선임 200엔)을 탔다. 히비港에 상륙한 후엔 택시를 호출하여 타고 다카시마역사민속자료관으로 달렸다.
다카시마는 麗蒙연합군의 제1차·제2차 원정 때 모두 對馬島-이키島에 이어 세 번째로 점령을 당한 섬이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馬山-對馬島-이키島-다카시마가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카타港에 상륙해 大宰府를 함락시키려 했던 麗蒙연합군으로선 다카시마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戰列(전열)을 가다듬는 집결지로서 필요한 입지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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