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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세자빈 김씨 교서(廢世子嬪金氏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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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4-08-10 22:23 조회1,9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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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 세자빈 김씨 교서(廢世子嬪金氏敎書) ▣

윤회(尹淮)
  왕은 다음과 같이 이르노라. 대개 들으니 서로 배필이 된다는 것은 생민(生民)의 첫 출발로, 운조(運祚)의 길고 짧은 것과 국가의 성하고 쇠하는 것이 여기에 매어 있다. 옛적에 주 문왕(周文王)이 세자가 되었을 때에, 성녀(聖女)사씨(姒氏)를 얻어 배필로 삼았는데, 화답하여 우는 요조(窈窕)의 덕주D-001으로 늘어져 굽어서 아래에 미치는 인(仁)주D-02을 베풀어 아들이 많은 응험을 부르고 자손을 위한 계획을 남겼으니, 아, 참으로 아름다웠다.
  후세로 내려와서는 순후한 풍속이 차츰 무너지고 여자에 대한 훈계가 전해지지 않아서, 후비(后妃)와 빈어(嬪御)가 간혹 부부간의 도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총애를 다투어 미도(媚道)주D-003를 끼고 염승(厭勝)주D-04을 행하여 쫓겨나게 되는 일이 있다. 경적(經籍)을 상고하여 보면 안방 은미한 곳의 말이 대개 애매한 것이 많지마는 만일 정상과 형적이 완연하게 드러나서 가리고 덮을 수 없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 누구를 탓하리오.
  우리 조종(祖宗)의 가법(家法)이 심히 엄정하여 매양 내조(內助)를 얻었다. 내가 지난  해에 세자를 책봉하고, 김씨(金氏)가 누대 명가(名家)이므로 간택하여 세자빈으로 삼았는데, 뜻밖에도 김씨가 미도(媚道)와 염승(厭勝)을 행하여 그 단서가 발각되었다. 과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곧 궁인을 보내어 심문하였더니, 김씨가 이리이리 대답하였는데, 말과 증거가 명백하여 옛적의 애매하고 의심스럽다는 일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아,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슬프다.
  세자를 책봉하고 배필을 택하는 것은 장차 종사를 받들고 모의(母儀)를 이루어 만세의 운조(運祚)를 누리려 함이다. 김씨가 세자의 배필이 된 지가 두어 해도 못 되었는데 꾀를 내어 감히 요사한 짓을 한 것이 벌써 이와 같다. 그러니 어찌 투기하는 마음이 없고 단정하고 온화한 덕을 나타내어서, 닭이 울었다고 세 번 고(告)하는 것주D-005을 이루고, 종사(螽斯)의 시(詩)주D-06와 아들이 백이나 되는 상서[祥]를 읊게 될 것주D-07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실로 조종(祖宗)이 흠향하지 않을 것이요, 내전(內殿)에서 용납되지 못할 일이니, 사리가 폐출하는 것이 합당하다. 내가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이미 선덕(宣德) 4년 7월 20일에 종묘에 고한 다음, 김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고 책봉한 인(印)을 회수하며, 사제(私第)로 추방하여 덕행이 엷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가법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뜻에 영합하여 순종하고 아첨하여 죄악을 저지르게 한 시녀 호초(胡椒)는 해당 법관에게 맡기어 극형에 처하였다. 생각건대, 이 이상한 일은 실로 나라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놀라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대소 신료들이 그 본말을 자세히 알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이에 교유하는 것이니, 마땅히 잘 알지어다.

[주 D-001] 화답하여 우는 요조(窈窕)의 덕 : 《시경》에, “관관(關關)한 저구새는 하수 언덕에 있네. 요조(窈窕)한 숙녀(淑女)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하였으니. 이것은 문왕(文王)의 부부를 읊은 것이라 한다.
[주 D-02] 늘어져 굽어서 아래에 미치는 인(仁) : 《시경》에, “아래로 굽은 나무에 칡덩굴이 매었네.” 하는 시가 있는데, 이것은 후비(后妃)가 질투하는 마음이 없이 여러 첩을 잘 거느리는 데 비유하여 읊은 것이라 한다.
[주 D-003] 미도(媚道) : 여인들이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무당의 방술로 자기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주 D-04] 염승(厭勝) : 여인이 질투로 남을 저주(詛呪)하는 요망스런 처방을 말한다.
[주 D-005] 닭이 울었다고 세 번 고(告)하는 것 : 《시경》을 보면, 어진 후비(后妃)가 같이 자는 임금에게, “닭이 울었소. 신하들이 조회하러 모였소.” 하는 시가 있는데, 그 시가 삼장(三章)으로 되었다.
[주 D-06] 종사(螽斯)의 시(詩) : 후비(后妃)가 질투하지 않아서 여러 첩에게서 자식이 많이 나는 것을 읊은 시이다.
[주 D-07] 아들이 백이나 되는 상서[祥]를 읊게 될 것 : 《시경》을 보면, “태사(太姒)가 덕이 있어 아들이 백이나 된다.” 한 시가 있다.

《출전 : 동문선 제24권 교서(敎書)》

[일찍이 문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 김오문(金吾文)의 딸을 취하여 세자빈(世子嬪)을 삼으니 곧 휘빈(徽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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