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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83---충렬공과 불교7 (동안거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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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4 12:50 조회1,7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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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안거사집 (이승휴 저)

전 중봉대부(中奉大夫) 도원수(都元帥)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 광정대부(匡靖大夫)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상장군(上將軍) 판전리사(判典吏事) 세자사(世子師)로 치사한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 일천호 식실 삼백호 김방경(金方慶)이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에게 답한 글


  지난 번 보내 준 양칙(兩則)의 법어(法語)를 항상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위에 놓아두고 서로 바꿔 가며 보면서, 보고 음미하며 싫어함이 없었으나, 근기(根氣)가 낮고 용렬해서 아득히 내 코를 찾아도 이해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감히 그것을 가슴에 새겨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겸해서 게송(偈頌)을 보내 주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유마(維摩)의 方丈(방장)*1)이 모암(茅庵)을 생각하였고,
금색의 두타(頭陀)가 화담(話談)을 접했도다.
팔만(八萬)의 예상(猊床)*2)을 어디에 놓았던고,
거울 같을 작은 못이 갑자기 와서 비춘다'

하였는데, 이 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요요암명(了了庵銘)을 보여 주었습니다.

옛날에 한 노인이 이르기를, "마음이 밝으면 법을 밝게 하고, 자기를 밝게 하면 사람을 밝게 한다. 자기가 밝지 못하면 곧 사람과 자기가 미혹하게 되고, 마음이 밝지 못하면 모든 세계가 마음을 따라 미혹해진다"고 하였고,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기를 "만법이 본래 공(空)하니,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이미 있는 것이 아니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원만해지고, 법이 이미 본래 공(空)하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항상 적적하다."고 하였고,

양무위자(楊无爲子)가 또 노래해 말하기를,

"산당(山堂)에 새벽이 되니 백운이 날아오르고,
산당(山堂)에 저녘이 되니 백운이 돌아가도다.
청송(靑松)이 늙음이여 월계(月溪)가 밝네,
밝고 밝지 못함이여 누구와 더불어 알 수 있겠는가?"고 하였고,

삼단어칙(三段語則)에 이어서 말하기를, "청컨대 거사는 주각(住脚)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 경계(境界)가 아닌데, 내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소.그러나 내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앞의 두 노인은 각기 한 부분을 찬양하고 무위자(無爲子)는 중간에서 노래했으니, 요요의 뜻이 지극하여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습니다.

또 한 노인*3)이 있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운을 이어 지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에 외로운 새가 날아가니 秋空晴兮孤鳥飛
내 자취를 숨기며 어디로 돌아가려 하느냐. 沒朕迹兮將安歸
회광반조(廻光反照)*4)함이여 못 미침이 없다네. 廻光炤兮无欠餘
명성이 미치지 않음은 심상하게 아는도다. 名不及兮尋常知
내가 한 마디 한 것을 화상은 어떻게 여기는가. 和尙以爲如何
귀위(歸依)할 바를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伏望小示指歸

--주해(註解)--
*l)방장(方丈) : 주지가 거처하는 방
*2)예상(猊床) : 부처가 앉는 자리
*3)한 노인 : 김방경 자신을 말함
*4)회광반조(廻光反照) :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心性을 反省하여 보는 것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 일천호 식실 삼백호 김방경(金方慶)이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에게 답한 글---

1296년 이후에 충렬공께서 답한 글로 보임.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알수 없으나,

---蒙山은 丁丑(1277)년 여름부터 澱山의 일을 마치고 中吳의 休休庵이라는 작은 庵子에 머물러 쉬고 있었다. 그가 63세 되던 고려 충렬왕21년(1295) 겨울에 고려에서 了庵元明 長老와 覺圓上人, 覺性上人, 妙孚上人 등 8사람이 찾아가 같이 지내다가 충렬왕22년(1296) 여름에 仲孚上人 등 4사람은 돌아 갔다.---

의 기록을 참고해 보면, 了庵元明 長老을 말하는 듯함. ▶앞으로 지속적인 자료 발굴과 분석이 필요함




▶▶▶---항상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위에 놓아두고 서로 바꿔 가며 보면서, 보고 음미하며 싫어함이 없었으나, ---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는 보조국사 지눌의 저술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인 듯함



■ 목우자 지눌 연구 (2001, 강건기, 부처님 세상)

1)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2) 수심결(修心訣)
3) 진심직설(眞心直說)
4)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5)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6)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지눌이 입적하기 한 해 전인 1209년 때의 저술이다. <화엄론절요>와 함께 절요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규봉 종밀의 <법집별행록>을 절요하고 그에 더하여 보조 자신의 견해를 밝힌 사기를 덧붙이고 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한국불교 강원에서의 교과서인 사집(四集) 속에 포함되어서 널리 연구되었기 때문에 많은 간본이 전해온다.
7)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8)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그러나 이 <화엄론절요>는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존재가 잊혀져 있다가 1943년 이종익 박사가 일본에 유학할 당시 금택문고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9) 불일보조국사비명병서(佛日普照國師碑銘幷序)
지눌이 입적한 다음 해 그 제자인 혜심 등이 그 행장 등을 갖추어 왕에게 보냈다. 왕은 문신인 김군수로 하여금 그 비문을 찬하게 하여 세웠다. 여기에는 지눌의 행력과 사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눌의 생애를 기록한 유일한 문헌이다.


■ 보조사상 제12집 (1999.2, 보조사상연구원, 불일출판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를 통해 본 普照 三門의 성격 (최연식/ 국사학, 서울대강사)

知訥 스님이 입적하기 1년 전인 1209년에 완성된 <法集私記>는 <원돈성불론> 및 <간화결의론>과 함께 스님의 가장 늦은 시기 저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제목에 밝혀져 있듯 규봉 종밀의 저작인 <법집>의 주요 내용을 간추리고(節要) 자신의 해석(私記)을 덧붙인 것인데, 구체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법집>의 해설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법집>을 소재로 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禪修行의 요체를 서술한 저술임을 알 수 잇다.
禪修行에 간한 宗密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결국에는 자신의 禪修行論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집>은 다른 禪書들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禪修行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법집사기>도 자연 禪修行에 대한 종합적인 이론서가 되고 있다.
이처럼 <법집사기>는 <법집>을 토대로 하면서도, 그것에 제한되지 않는 지눌 스님의 독자적인 禪修行論을 펼치고 있는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책에 스님의 다른 주요 저술들(권수정혜결사문, 수심결,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언급되면서 더욱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晩年이라는 저술 시기와도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스님의 평생의 사상이 글자 그대로 蘊蓄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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