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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재 휘 희수 필적(홍상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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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08-18 09:22 조회1,4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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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국 수록대부 당양군 증시소이 홍공신도비명 병서        
봉열대부 수 성균관사성 지제교 이행은 글을 짓고        
조봉대부 수 사헌부장령 김희수는 글을 쓰다.        
(후략)        
                
有明朝鮮國 綏祿大夫 唐陽君 贈諡昭夷 洪公神道碑銘 幷書        
奉列大夫 守 成均館司成 知製敎 李荇 撰        
朝奉大夫 守 司憲府掌令 金希壽 書        
(後略)        
                
HONGSANG001.jpg        
▲ 홍상 신도비
HONGSANG002.jpg
▲ 신도비 탁본        
                
홍상(洪常) 1457(세조 3)∼1513(중종 8).        
조선 덕종의 부마.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강(子剛). 좌의정         
응(應)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 12) 덕종의 딸 명숙공주(明淑公主)와         
혼인하여 당양위(唐陽尉)에 봉하여지고 세조의 사랑을 받아 도총관이        
되었다. 연산군 초에 수록대부(綏祿大夫)가 되었다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 함평으로 유배되었다가 가까운 안성으로 옮겨        
졌으며, 다시 제주로 이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조정에 돌아온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의         
호를 받았다. 평소 도량이 넓고 성품이 온화하여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여 그가 부마인지 모르는 자가 많았다. 시호는 소이(昭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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