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탄(自歎)/혼자 탄식함<예순 비구니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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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실 작성일04-08-18 21:01 조회1,426회 댓글0건본문
▣ 자탄(自歎)/혼자 탄식함 ▣
문헌편찬회(文獻編纂會)편 한국역대명시전서(韓國歷代名詩全書)에 예순(禮順)비구니 작으로 된 자탄(自歎)이란 제목의 한시(漢詩)가 한 수가 실려 있다.
祗今衣上汚黃塵 (지금의상오황진) 어느새 이 몸 풍진 속에 더럽혔느니
何事靑山不許人 (하사청산불허인) 청산마저 이 몸을 싫다는 구나
寰宇只能囚四大 (환우지능수사대) 하늘 땅 넓다 해도 이 몸 하나 둘 곳이 없네
金吾難禁遠遊身 (금오난금원유신) 금오랑 넨들 어찌 멀리 멀 리 떠도는 이 몸 잡을 수 있으리
*(주) -환우(寰宇) : 우주, 하늘과 땅, 온 천하를 말함
-사대(四大) : 불가(佛家)에서는 세상 만물을 이루는 그 근본을 지(地),수(水).화(火), 풍(風)의 네 가지로 보고 이를 사대(四大)라 하며, 사람의 몸도 또한 이들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사대(四大)라고 함
-금오(金吾) : 죄인을 잡아들이는 의금부 도사, 또는 저승사자를 이름
▣ 예순(禮順)비구니 ▣
동평위공사문견록(東平尉公私聞見錄 : 효종의 다섯째 사위인 동평위 정재륜(鄭載崙)이 듣고 보고한 세종-숙종 연간의 일들을 기록한 책)의 예순 비구니에 대한 기록.
김자겸(金自兼 : 靖社 一等功臣 金自點의 弟)의 부인 李氏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仁祖反正을 主謀하여 靖社 一等功臣이 됨)의 딸이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책을 많이 읽고 출가(出家)해서 비구니승이 되었다. 궁녀(宮女)들이 이 여승을 존경하고 신복해서 왕래하면서 가까이 지냈다.
계해년(癸亥年 : 仁祖反政이 일어난 해, 서기 1623년)에 반정(反正) 공작을 할 때 이귀(李貴)는 그 주모자였다. 이 공작을 염탐한 사람이 광해군(光海君)에게 고변(告變)을 하자 왕이 명하여 국청을 차리게 하고 나졸(邏卒)들을 풀어 이귀 일당을 잡아들이게 하니 장차 그 화(禍)가 어떻게 미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여승 이씨(李氏 : 李貴의 딸)가 광해군이 끔찍이도 사랑하던 김상궁(金介屎)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기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부친의 왕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한 가사(歌辭)를 적어 보냈다.
김상궁이 이 편지와 가사를 보고 감동하여 이귀의 충성심을 믿게 되었으며, 이 편지를 광해군 앞에서 읽어보였는데 그 편지의 글귀 하나하나가 모두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는 지라 임금의 마음도 측은해졌다. 이때 김상궁이 말하기를 ‘군왕이 이렇게 충성심이 가득 찬 신하를 형벌로서 다스리면 그 사람의 억울한 원한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니 광해군도 맞는 말이라 하며 옥사(獄事)를 풀게 하였다. 그런데 그 날 밤 삼경(三更)에 반정군이 일어나서 궁(宮)을 깨끗이 쓸어내는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그 후에 한 늙은 궁인(宮人)이 손수 본 대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출전 : 沙月 李 盛 永(延安李氏宗報 1992년봄호 통권23호 揭載,增補)》
문헌편찬회(文獻編纂會)편 한국역대명시전서(韓國歷代名詩全書)에 예순(禮順)비구니 작으로 된 자탄(自歎)이란 제목의 한시(漢詩)가 한 수가 실려 있다.
祗今衣上汚黃塵 (지금의상오황진) 어느새 이 몸 풍진 속에 더럽혔느니
何事靑山不許人 (하사청산불허인) 청산마저 이 몸을 싫다는 구나
寰宇只能囚四大 (환우지능수사대) 하늘 땅 넓다 해도 이 몸 하나 둘 곳이 없네
金吾難禁遠遊身 (금오난금원유신) 금오랑 넨들 어찌 멀리 멀 리 떠도는 이 몸 잡을 수 있으리
*(주) -환우(寰宇) : 우주, 하늘과 땅, 온 천하를 말함
-사대(四大) : 불가(佛家)에서는 세상 만물을 이루는 그 근본을 지(地),수(水).화(火), 풍(風)의 네 가지로 보고 이를 사대(四大)라 하며, 사람의 몸도 또한 이들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사대(四大)라고 함
-금오(金吾) : 죄인을 잡아들이는 의금부 도사, 또는 저승사자를 이름
▣ 예순(禮順)비구니 ▣
동평위공사문견록(東平尉公私聞見錄 : 효종의 다섯째 사위인 동평위 정재륜(鄭載崙)이 듣고 보고한 세종-숙종 연간의 일들을 기록한 책)의 예순 비구니에 대한 기록.
김자겸(金自兼 : 靖社 一等功臣 金自點의 弟)의 부인 李氏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仁祖反正을 主謀하여 靖社 一等功臣이 됨)의 딸이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책을 많이 읽고 출가(出家)해서 비구니승이 되었다. 궁녀(宮女)들이 이 여승을 존경하고 신복해서 왕래하면서 가까이 지냈다.
계해년(癸亥年 : 仁祖反政이 일어난 해, 서기 1623년)에 반정(反正) 공작을 할 때 이귀(李貴)는 그 주모자였다. 이 공작을 염탐한 사람이 광해군(光海君)에게 고변(告變)을 하자 왕이 명하여 국청을 차리게 하고 나졸(邏卒)들을 풀어 이귀 일당을 잡아들이게 하니 장차 그 화(禍)가 어떻게 미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여승 이씨(李氏 : 李貴의 딸)가 광해군이 끔찍이도 사랑하던 김상궁(金介屎)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기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부친의 왕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한 가사(歌辭)를 적어 보냈다.
김상궁이 이 편지와 가사를 보고 감동하여 이귀의 충성심을 믿게 되었으며, 이 편지를 광해군 앞에서 읽어보였는데 그 편지의 글귀 하나하나가 모두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는 지라 임금의 마음도 측은해졌다. 이때 김상궁이 말하기를 ‘군왕이 이렇게 충성심이 가득 찬 신하를 형벌로서 다스리면 그 사람의 억울한 원한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니 광해군도 맞는 말이라 하며 옥사(獄事)를 풀게 하였다. 그런데 그 날 밤 삼경(三更)에 반정군이 일어나서 궁(宮)을 깨끗이 쓸어내는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그 후에 한 늙은 궁인(宮人)이 손수 본 대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출전 : 沙月 李 盛 永(延安李氏宗報 1992년봄호 통권23호 揭載,增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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