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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왜 충렬공 할아버님이?(충렬공 자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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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12-22 18:29 조회1,5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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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왜 충렬공 할아버님이?



감사원에 왜 충렬공 할아버님이 계시는가?



다름이 아니라 감사원 홈 페이지에 충렬공 자료가 수록 되어 있기에 소개합니다.



감사원 홈페이지(www.bai.go.kr)-



감사50년사-제2장 감사제도의 역사-5.고려시대의 훌륭한 대관들-



1.재상의 청탁을 태연히 거절한 감찰어사 김방경 으로 직접이동



 



1. 고려시대의 관제



2. 고려시대의 감사제도



3. 고려시대 대관의 활동



4. 대관 등의 지방 파견



5. 고려시대의 훌륭한 대관들



 



고려시대의 대관들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 중 몇 분의 행적을 소개한다.23)



 



① 재상의 청탁을 태연히 거절한 감찰어사 김방경



金方慶(1212~1300)은 고종 때 감찰어사가 되어 右倉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는 어떠한 청탁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어떤 재상이 권신에게 고하기를



“이번 어사는 먼젓번 어사처럼 공무를 돌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마침 그때 김방경이 왔으므로 권신이 꾸짖으니 김방경이 대답하기를



 “전번 어사처럼 일하려면 저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저는 국가 창고의



저축을 늘리고자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말을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고소한 자가 크게 부끄러워하였으며 권신 역시 얼굴색이 변하였다 한다.



김방경이 견룡행수(儀仗兵의 지휘관)가 되었을 때 禁衛軍(왕궁을 지키는 군대)이



권세가에 다투어 아부하는 한편 숙위가 몹시 게을러지니, 그는 이에 분노하여 비록



병이 있더라도 휴가를 청하지 않고 숙위하였다. 숙위하는 처소가 비좁아서



수비군인들이 밖에 나가서 자는가 하면 한 번은 기생을 데리고 와서 자려는 사람이



있어 김방경이 말리니 무안해 하며 사과한 사례도 있었다.



 



김방경은 그 후 서북면 병마판관 등을 거쳐 어사중승에 임명되었는데, 법률을



준수하였고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았으며 기풍과 절개가 높고 위엄이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을 잘 거두고 근면하였으며 대낮에는 눕는 일이 없었고 건강을



유지하여 병환이라곤 없었다. 옛 친구들을 잊지 않고 죽으면 반드시 조상을



갔다고 하며 평생동안 임금의 잘못을 말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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