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충렬공 金方慶 105---충렬공 2남 김흔 1사위 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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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1 09:40 조회1,478회 댓글0건본문
■ 안동김씨 족보 (1580년 경진보)
2남 흔( ) 고명 수(綏) 삼중대광 자의도첨의사사 습봉상락공 향년59 종부정탐라일본 계유공 합단란전 우연기대첩 성활달자혜 심휼친척궁자 이부유명 사만호 수형자승용 사견려사열
---여 민적(閔적) 宰臣에 출가
---여 조련(趙璉) 贊成에 출가
김방경---김흔---女+민적
--------민종유---민적(+김씨)---민사평---女+김묘---김구용
--------민종유---민적(+재취)---민변-----민제------원경왕후(+태종),-,-,-, 민무회(+여 <부 김익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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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유(閔宗儒) ***김흔의 사돈, 민적의 부
1245(고종 32)∼1324(충숙왕 11). 고려 후기의 정치가. 본관은 여흥(驪興). 평장사 영모(令謨)의 현손이다.
11세 때 왕자 시양부(始陽府)의 학우가 되고 19세에 청도감무(淸道監務)를 지내면서 치적이 많아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 전직되었다.
이때 유천우(兪千遇)가 도병마사(都兵馬使)로 있으면서 그의 인물됨을 보고 기특하게 여겨 사위로 삼았다. 충렬왕 때 삼사우윤(三司右尹)에 오르고 밀직부사 형조판서(密直副使刑曹判書)에 이르러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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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천품이 장중하고 풍도가 아름다우며, 함부로 사람들과 교유하지 않았고, 종족 사이에도 돈독하였다. 공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손님의 방문도 사절하여 집안 일을 깨끗이 정리하였고, 말을 좋아하여 항상 당하에 말을 매어놓고 감상하였다.
만년에는 거문고와 퉁소를 즐겨 꽃을 심고 기생들과 즐겼다.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 민적(閔#적42) ***김흔의 1사위
1269(원종 10)∼1335(충숙왕 복위 4).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낙전(樂全). 찬성사 종유(宗儒)의 아들이며, 이모부인 재상 김군(金#군15)의 집에 양육되었다.
풍채가 수려하였으며, 10세에 절에 나아가 글을 배웠는데 총명하여 글을 배우면 곧 그 뜻을 통하였다고 한다. 충렬왕이 이 소문을 듣고 불러서 국선(國仙)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후 과거에 급제하여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되고, 첨의주서(僉議注書), 비서랑(#비58書郎)을 거쳐 군부정랑(軍簿正郎)에 이르렀고, 판도정랑(版圖正郎)에 이르러 세자궁문랑(世子宮門郎)을 겸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비서소윤(#비58書小尹)이 되었으나, 이후 충렬왕이 복위하자 면직되어 충선왕을 따라 연경(燕京)에 4년간 머물렀다가 돌아와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었다.
1308년 다시 충선왕이 복위하자 전의부령(典儀副令)이 되고, 이어 선부의랑지제교(選部議郎知製敎)가 되었다가 밀직승지 겸 사헌집의로 승진하였다. 이어 평양윤(平壤尹)이 되었으나 얼마 뒤 파직되고, 4년간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나 녹봉은 전과 같이 받았다.
1313년 충숙왕이 즉위하자 선부전서 보문각제학(選部典書寶文閣提學)을 제수받았고, 다음해 밀직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이어 대사헌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온 뒤 여흥군(驪興君)에 봉하여졌다. 충혜왕 때 밀직사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密直司事進賢館大提學知春秋館事)를 제수받았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 민사평(閔思平) ***김흔의 외손자, 김륜의 사위, 김묘의 처부 (김구용의 외조부)
1295(충렬왕 21)∼1359(공민왕 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적(#적42)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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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를 즐기고 학문에 열중하여 당시 이제현(李齊賢)·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다. 《동문선 東文選》에 그의 시 9수가 전한다.
저서로는 보물 708호로 지정된 《급암선생시집(及菴先生詩集)》이 있다.
김방경---김흔---女+민적
--------민종유---민적(+김씨)---민사평---女+김묘---김구용
--------민종유---민적(+재취)---민변-----민제------원경왕후(+태종),-,-,-, 민무회(+여 <부 김익달>)
● 민제(閔霽) ***민사평의 이복동생 민변의 아들이고, 무구(無咎)의 아버지이며, 태종의 장인이다. 막내아들 무회는 김익달의 사위
1339(충숙왕 복위 8)∼1408(태종 8).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중회(仲晦), 호는 어은(漁隱). 여흥출신. 변(#변03)의 아들이고, 무구(無咎)의 아버지이며, 태종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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