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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충렬공 金方慶 110---충렬공 3남 김순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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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3 10:09 조회1,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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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공 묘지명 (1321년 민지 찬)

배(配)는 광정대부 첨의중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전리사사 세자사 증시 문경공(匡靖大夫 僉議中贊 修文殿太學士 監修國史 判典理司事 世子師 贈諡 文敬公) 휘(諱) 허공(許珙)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4남3녀를 낳으셨는데

장남 영돈(永暾)은 현재 도관직랑 지합주사(都官直郞 知陜州事)로 있고 2남 영휘(永暉)는 현재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 保勝別將)으로 있고 3남 사순(斯順)은 삭발하고 자혜종 대덕이 되었고, 4남 영후(永煦)는 사헌부 지평으로 있다.

장녀는 입내시 중정대부 친어군대호군(入內侍 中正大夫 親禦軍大護軍) 정책에게로 출가하고 2녀는 대광 상당군(大匡 上黨君) 백이정에게 출가하고 3녀는 원나라 좌승상(左丞相) 아홀반(阿忽反)의 아들인 사인(舍人)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 )에게로 출가하였다.




■ 김문영공 부인 허씨 묘지명 (1332년 이제현 찬)

▣ 익재난고 제7권 비명 p233
김문영공 부인 허씨의 묘지명 병서
金文英公夫人 許氏의 묘지명 병서

부인의 성은 허씨니 중찬 文敬珙 공(珙)의 둘째 딸이다. 大夫는 추밀원부사 수(遂)요, 曾大父는 예빈소경 경(京)이며, 어머니 윤씨는 정당문학 文平珙의 딸인데 나면서부터 근실하였으므로 문경공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윤씨(=허씨 모)를 사랑하는 날이 곧 乙丑日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부인(=허씨)이 탄생한 해라 하여 장사 날짜를 개정하자고 청하니, 문경공(=허공)이 이르기를 "나의 이 딸(=허씨)은 뒤에 반드시 복을 누릴 것이니, 혐의(嫌疑)할 것 없다." 하였다.
훌륭한 사위인 故 정승 상락군 文英公 김공 순(恂)을 택하여 시집보냈다. 김씨와 허씨는 모두 大族이라서 사치와 부유함을 과시하는 가문이었으나, 부인은 예법으로 자지(自持)하였으므로 헐뜯는 사람이 없었다.
문영공(=휘손)이 늦게 노래 부르는 기생을 즐겨하였으나 일찍이 질투하는 빛이 없었으며, 문영공보다 12년 뒤인 至順(원 문종의 연호) 3년 (1332) 7월 辛卯日에 병으로 졸하였다.
모두 4남 3녀를 낳았는데,
큰아들 永暾은 봉상시부 전법총랑이요, 둘째아들 永暉는 홍위위 낭장이요, 셋째아들은 出家하여 자은종 대덕이 된 思順이요, 넷째아들 永煦는 봉선대부 자섬사사이며, 첫째딸은 대광 청하군 정책(鄭 )에게 시집갔는데 먼저 죽었고 둘째딸은 대광 상당군 백이정(白 正)에게 시집갔고 막내딸은 王人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에게 시집갔는데 강절성 참지정사라 한다.

명은 다음과 같다.
유순하고 올바른 부덕을 갖추었고 너그럽고 온화한 모칙(母則)이 아름답도다. 문경공(=허공)에 대하여도 감재(鑑裁)가 매우 분명하였으니, 그 아들을 보살핌에도 더욱 정밀하였으리라. 군자의 배필이 되어 어질기도 했거니와 천수를 누렸으니, 내가 유허(幽墟)에 명을 지어 悠久한 내세에 알리노라



■ 안동김씨 족보 (1580년 경진보)

3남 순(恂) 자 귀후 향년64 등제 중대광 판삼사사 상락군 시문영 충렬공 정일본 공잠등주이종 성관후 공예서 만축성기일이?위락 사견여사 부인 양천허씨
---여 백이정(白이正) 宰臣에 출가
---여 별리불화(別里不花) 무후에 출가
---여 정책(鄭책) 청하군에 출가
---자 영돈(永旽) 小字 나해(那海)
---자 영휘(永暉) 宰臣
---자 사순(思順) 삭발 宗慈
---자 영후(永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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