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충렬공 金方慶 112---충렬공 3남 김순 1사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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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3 10:18 조회1,449회 댓글0건본문
정해-----정책+여(부 김순)---정오, 정포
김순-----1녀+정책
■ 문영공 묘지명 (1321년 민지 찬)
장녀는 입내시 중정대부 친어군대호군(入內侍 中正大夫 親禦軍大護軍) 정책에게로 출가하고
■ 김순처 허씨 묘지명 (1332년 이제현 찬)
장녀는 대광 청하군 鄭 (정책)에게 시집갔는데 먼저 죽었고
■ 안동김씨 족보 (1580년 경진보)
---여 백이정(白이正) 宰臣에 출가
---여 별리불화(別里不花) 무후에 출가
---여 정책(鄭책) 청하군에 출가
---자 영돈(永旽) 小字 나해(那海)
---자 영휘(永暉) 宰臣
---자 사순(思順) 삭발 宗慈
---자 영후(永煦)
■ 고려사 (2003. 8. 27. 태서(익) 제공)
6월 찬성사 정해(鄭?)가 졸하였다.
해(?)는 의(?)의 손자로 처음에는 필도치(必?赤)가 되어 이혼(李混)ㆍ윤보(尹珤)와 이름을 나란히 드날렸다. 뒤에 전주(銓注)를 맡아서는 법을 지키고 공정하여, 비록 왕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부리는 자가 왕의 뜻이라 하여 청탁하여도 듣지 않았다. 이해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장자빈(張子贇)ㆍ한종유(韓宗愈)ㆍ★김영돈(金永旽)은 모두 그가 뽑은 사람들이다.
학사연(學士宴)에서 왕이 글씨 족자를 내렸는데, 해가 기뻐서 펴보니, 그 한 연구에, 모든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몸은 문득 죽네 / 萬事不成身便死 하였다. 해는 얼굴빛이 변하고 좌객은 소스라쳐 놀랐는데, 얼마 안 있다가 졸하였다.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 영가지
○회곡촌(檜谷村) : 하계곡(下桂谷) 서쪽 몇 리쯤에 있다. 중앙에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들어 간다. 외로운 산이 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忠烈公)8) 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 마을 입구에 남쪽으로 향하여 큰 밭이 있는데 유전(流傳)하기를 이는 충렬공(忠烈公)의 집터라고 한다. 충렬공(忠烈公)은 대대로 여기에 살면서 여러 대(代)에 걸쳐 벼슬하였다. 문극공(文克公) 설헌(雪軒) 정오(鄭?)와 대사간(大司諫) 설곡(雪谷) 정포(鄭?)는 외가이므로 와서 살았다.
《출전 : 국역 영가지 권지1 pp56》
■ 안동시청 홈
청주정씨
'영가지'에 의하면 청주정씨가 안동에 살기는 공민왕때 첨의평리를 지내고 서원군에 봉해진 ★정오와 우간의대부를 지낸 그 아우 ★정보 형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정책이 궁궐도감으로,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왕(충숙 왕)을 도운 공으로 청하군에 봉해지고 판도판서를 역임했는데, 이는 ★김방경의 아들인 상락군 ★김순의 사위로, 안동에 입향한 설헌 정오, 설곡 정보은 바로 이의 아들이다. ★설헌은 문과급제로 공민왕의 사부, 첨의평리를 지내고, 그 아우 ★설곡은 진사, 문과로 충혜왕때 우간의대부를 지냈다.
'영가지' 방리편 회곡촌조에 '마을 어귀에 남향으로 된 큰 밭이 있으니, 예로부터 전하기를 ★충렬공이 여기서 살았는데, 설헌과 설곡형제도 외가로하여, 와서 살다'라고 했음을 보아, 설헌 형제가 이곳 회곡에 입향하게 되기는 그 외가의 반연이었음을 알수 있다.
■ 디지털한국학
● 정포(鄭#포33) ***정포는 김순의 외손자, 별가불화는 김순의 3사위
1309(충선왕 1)∼1345(충목왕 1).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해(#해15)의 손자로, 판선공(判繕工) 책(責)의 아들이며, 최문도(崔文度)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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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풀리자 다시 출세의 의지를 가지고 원나라에 건너갔으며, 원나라 승상인 별가불화(別哥不花, 別哥普化)가 그를 한번 보고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되어 원나라 임금에게 추천하였으나, 그뒤 얼마 안 되어 37세의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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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鄭#오74){2} ***김순의 외손자
?∼1359(공민왕 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
찬성사 해(#해15)의 손자로, 판도판서(版圖判書) 책($책01)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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