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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128---안동 회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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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7 08:49 조회1,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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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풍산읍 회곡리는 충렬공 유허지입니다.

충렬공의 胎址(태지)라고 전해오고 있는 마을이고, 충렬공의 집터라고 전해오는 마을 어귀의 밭이 있는 곳이며, 충렬공께서 정자를 세웠다는 곳과 마을 앞 낙동강 건너 절벽에는 충렬공께서 유상하시던 상락대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 마을은 충렬공의 셋째아들 문영공(김순)의 맏사위인 정책의 두 아들 정오와 정보가 외가의 인연으로 이 마을에 입향하여 세거하여 왔다고 합니다.



▣ 영가지
   ○영가지(永嘉誌)」<안동읍지(安東邑誌)>에 의하면 안동(安東)에는 김방경(金方慶)의 유적(遺蹟)이 곳곳에 산재(散在)하고 있다.
上孤山 上洛公金方慶作亭其上, 基礎尙在, 上洛臺 在府西金谷村, 金方慶嘗遊賞地 (「永嘉誌」卷 2, 山川條) 《출전 : 영남 사림파의 형성 pp57/영남대학교 출판부/이수건》
☞‘상고산 위에 상락공 방경 할아버지께서 정자를 지으셨는데 지금도 그 기초가 남아있다.’ 그리고 상락대는 ‘안동부 서쪽 금곡마을에 있는데 김방경이 일찍이 유상한 곳이다.’
   ○상고산(上孤山) : 안동부(安東府)의 서쪽 회곡촌(檜谷村) 앞의 남양담(南陽潭) 위에 있다.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12)이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는데, 그 기초(基礎)가 지금도 남아있다.
《출전 : 국역 영가지 권지2 pp91》

   ○회곡촌(檜谷村) : 하계곡(下桂谷) 서쪽 몇 리쯤에 있다. 중앙에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들어 간다. 외로운 산이 강과 시내가 합치는 곳에 있으니 여기가 충렬공(忠烈公)8) 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 마을 입구에 남쪽으로 향하여 큰 밭이 있는데 유전(流傳)하기를 이는 충렬공(忠烈公)의 집터라고 한다. 충렬공(忠烈公)은 대대로 여기에 살면서 여러 대(代)에 걸쳐 벼슬하였다. 문극공(文克公) 설헌(雪軒) 정오(鄭?)와 대사간(大司諫) 설곡(雪谷) 정포(鄭?)는 외가이므로 와서 살았다.
《출전 : 국역 영가지 권지1 pp56》

   ○상락대(上洛臺) : 안동부 서쪽 25리 회곡촌(檜谷村)의 남쪽 기슭에 있는데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이 일찍이 유상(遊賞)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지었다. 동쪽에 마암(馬巖) 절벽이 있어 천길을 깎아 세운 듯 하다. 암서(巖西)에는 석대(石臺)가 반회(盤回)하고 기괴(奇怪)한 경치가 형용하기 어려우며, 아래는 맑은 못에 배를 댈만하고 위에는 수십 인이 앉을 수 있다. 돌 사이에는 비채(菲菜)가 많이 나는데, 전하기는 상락공이 심은 것이라 한다.
《출전 : 국역 영가지 권지2 pp110》



■ 경북마을지 下권

●풍산면 회곡리
1)마을의 자연환경
풍산읍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남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후면단호동, 북쪽으로 수곡동 막곡동을, 동남쪽은 계평동과 접하는 동리로서 낙동강이 북쪽을 흐름을 바꾸는 강 기슭의 구릉지대에 산재하는 촌락으로 형성되는 동리이다.

2)마을의 역사
본래 안동군 서선면 지역으로 전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회곡 또는 회곡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사동, 상계곡동, 증수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곡동(리)라 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영가지 안동부서의 방리조에
"회곡촌 : 하계곡 서쪽 얼마되지 않은 곳에 있다. 동리의 가운데를 조그마한 시내가 산에서 흘러내려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고산에서 흐르는 시내가 강과 합하는 곳에 충렬공 ★김방경 장군이 정자를 지은 곳이다. 마을 어구에 남향의 화전이 있어 옛날부터 ★충렬공의 집터라고 전하여 왔으며 충렬공의 후손이 이 마을에 세거하면서 대대로 벼슬을 하였다. 문극공 설헌 ★정오, 대사헌 ★정보가 이 마을이 외가 곳이 되어 우거하였다" 라 실리어 있다.

고려 명신 충렬공 ★김방경 장군이 노시던 곳으로 경관지로 알려진 낙동강의 절벽에 상락대가 마을 앞에 있다. 마을 앞의 소는 낙연이며, 그 앞에 단호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다. 상락대의 동편의 바위는 마암이라 가파른 절벽이 대의 경관을 더욱 높인다.

3)성씨별 가구분포
총 가구수 101가구, 안동권씨 14가구, 안동김씨 30가구,



■ 안동시청 홈페이지

●안동김씨(先金)
시조는 ★金叔承, 신라 敬順王의 넷째아들 은열(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중시조 충열공 ★김방경(忠烈公 金方慶)은 경순왕의 9세손이다.

본래 寓居地는 영가지 坊里편 府西조에 檜谷村이라고 소개되는 곳으로서, "下桂谷(현재의 풍산읍 계평리) 서쪽 몇 리쯤에 있다. 중앙에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들어간다. 마을 입구에 남쪽으로 향하여 큰 밭이 있는데 流傳하기를 ★충열공의 집터라고 한다"라고 記述하고 있다.
---후 략---


●청주정씨
'영가지'에 의하면 청주정씨가 안동에 살기는 공민왕때 첨의평리를 지내고 서원군에 봉해진 ★정오와 우간의대부를 지낸 그 아우 ★정보 형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정책이 궁궐도감으로,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왕(충숙 왕)을 도운 공으로 청하군에 봉해지고 판도판서를 역임했는데, 이는 ★김방경의 아들인 상락군 ★김순의 사위로, 안동에 입향한 설헌 정오, 설곡 정보은 바로 이의 아들이다. ★설헌은 문과급제로 공민왕의 사부, 첨의평리를 지내고, 그 아우 ★설곡은 진사, 문과로 충혜왕때 우간의대부를 지냈다.

'영가지' 방리편 회곡촌조에 '마을 어귀에 남향으로 된 큰 밭이 있으니, 예로부터 전하기를 ★충렬공이 여기서 살았는데, 설헌과 설곡형제도 외가로하여, 와서 살다'라고 했음을 보아, 설헌 형제가 이곳 회곡에 입향하게 되기는 그 외가의 반연이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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