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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도> 대형 영토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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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8-27 15:00 조회1,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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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업체서 대형 영토기 제작
[한겨레신문 2004.08.26]

인터넷 음악사이트인 ‘맥스 MP3’을 운영하는 ㈜AD2000 엔터테인먼트(대표 김영철·성남시 분당구 야탑동)가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을 항의하는 의미로 한반도뿐 아니라, 고구려 땅이 포함된 대형 ‘영토기’를 만들어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에 나선다.

이번에 제작되는 영토기는 가로 15m, 세로 20m 크기이며 1402년 만들어진 ‘★혼일강리도’(사진)를 바탕으로 한반도는 물론 독도와 고구려 영토까지 포함해 도안된 대형 깃발이다. 이 회사는 전국을 순회하며 영토기 전시와 함께 역사왜곡 항의 규탄대회, 나라사랑 1천만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오는 31일부터 6일 동안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첫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병자호란 당시 대표적 항쟁지로 꼽히는 남한산성에서 열리는 첫 행사는 성남시와 성남시 새마을회가 지원하고 이대엽 성남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시민 1천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또 행사기간 성남시내 중심가에 소형 영토기(60×150㎝) 150개가 내걸린다.

AD2000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맥스MP3 사이트 음악감상실에 ‘나라사랑 음악사랑 캠페인’ 창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지난 3개월 동안 1만3천건의 글이 올라왔다”며 “네티즌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명운동은 다음달 6일부터 분당새도시 중원공원에서 이어진다.

성남/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




■ ‘혼일강리도’단서로 그려본 조선과 중국의 문화교류도
[경향신문 2003.09.26 23:18:33]

◇日서 펴낸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1402년 조선에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사진)가 만들어졌다. 이 지도는 중국·조선·일본이 한 장에 그려진 최초의 동아시아 전도였다. 단순히 동아시아 전역을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유럽까지 매우 부정확하게나마 그려넣었다. 혼일강리도가 이때 만들어진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일본 역사학자인 기시모토 미오(도쿄대 교수·중국명청사)와 미야지마 히로시(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한국근세사)가 공동 집필한 역사서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김현영·문순실 옮김, 역사비평사)는 혼일강리도의 제작배경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 해답은 중국 송대에 발달한 논농사, 도자기제조, 목면사용, 제지·인쇄기술 등의 생활혁명이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가 되면서 사람·물자·정보의 교류가 현격히 진전됐고 자연히 문화적 일체성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저자들은 조선사와 중국 명·청사를 비교, 연구할 필요성을 도출한다. 최초로 중국사와 한국사를 나란히 기술한 이 책은 일본 중앙공론사가 기획한 ‘세계의 역사’(전 30권) 중 한 권으로 발간됐다. 두 저자는 자신들에게 외국사인 중국사와 한국사가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더욱 정확하게 파악된다고 본다. 특히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양국의 15~19세기는 소농사회의 형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현재를 지배하는 ‘전통’을 만들어낸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 명청사 전문가인 기시모토 교수는 중국 대외관계의 핵심인 조공체계의 완성, 명대말(16세기) 상업·수공업의 발전에 힘입은 근대적 양상, 최초의 이민족 국가였던 청의 등장과 백수십년에 걸친 태평성대, 청대 말의 위기감 등을 차례로 기술한다. 또 한국근세사 전공자인 미야지마 교수는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독특한 지배엘리트 계층의 성립, 통치체제의 활력을 고갈시킨 17~18세기의 당쟁사,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에 역설적으로 풍요로웠던 실학의 의의와 한계 등을 짚어나간다.

마지막 장(10장)에서 저자들은 당초의 목표였던 비교전통사회론을 함께 펼쳐보인다. 그들에 따르면 중국·한국·일본에서 통용되는 ‘가’(家)의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중국 ‘가’ 의식의 근본은 남계의 피를 통해 면면히 계승되는 생명의 흐름이다. ‘기’(氣)라고도 표현되는 이러한 흐름은 하나의 줄기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이 생겨나듯이 광범위한 확대와 결속을 가능하게 만든다. 반면 가업(家業)·가산(家産)·가명(家名)이 삼위일체가 된 일본의 견고한 ‘가’ 의식은 천황제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렇다면 한국의 ‘가’ 의식은 어떤가. 필자들은 ‘조선 전통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중간집단은 없거나 매우 약했다’고 주장한 미국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의 논의를 빌려 한국의 ‘가’에는 이렇다 할 정체성이 없다고 진단한다. 이어 현대에 들어와 일본을 비롯, 해외에서 보여주는 한국인의 왕성한 정착력은 이같은 정체성의 유연함에서 비롯된다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다.

〈한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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