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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135---물계서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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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8 12:07 조회1,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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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계서원 및 물계서당 답사기


● 김재원 (2002/07/03)

물계서당; ? 물계서원 -충렬공과 문온공의 위패가 봉안돤 곳이었으나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철폐 되었음. 그후 경북 예천의 지방 뜻있는 유림들이 뜻을 모아 물계서당을 세우고 위패를 모시고 후학을 가르치며 풍산김씨 문중에서 물계서당을 관리해오고 있었으나 제가 96년 답사시에는 기와 지붕이었으나 비가 세고 관리가 허술해 98년 답사시에는 지붕을 천같은것으로 덮어 씨웠음.


● 김주회 (2003/03/06)

예천온천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왼편 마을 산아래 눈에 익은 건물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재원 종친님께서 전에 소개해 주신 물계서당 사진을 복사해 왔는데 대조해 보니 맞습니다. 예천온천 맞은편 마을 (예천군 감천면) 관현1리에 물계서당이 있습니다.

물계서원에는 우리 선안동김문인 김방경(1212-1300)과 김구용(1338-1384), 풍산김문인 김양진(1467-1535)을 배향하였고 서원건립자인 풍산김문 김응조(1587-1667)도 배향하였던 곳입니다.

풍산김문 김응조가 세운 물계서원에 우리 선안동김문 충렬공(김방경)과 문온공 척약재(김구용) 선조님을 배향하게 된 이유가 자못 궁금해집니다. 안동이 고향이고 성리학 집안인 김응조 집안에서 역시 안동지방의 명문인 (물계서원터는 당시 안동부내 감동 물한촌임) 충렬공과 여말의 성리학자 문온공 척약재를 배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여말의 성리학자 김구용 선조님의 성리학풍이 고향인 안동지역의 유학계에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경내 건물로 廟宇(묘우), 강당, 동재, 서재, 전사청, 신문, 정문, 재사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각 건물마다 현판 편액이 있었을 텐데, 이름은 무엇이었고 혹 현판 실물이 현재도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보면 1661년에 물계서원을 세웠는데, 당시의 경내 건물로 廟宇(묘우), 강당, 동재, 서재, 전사청, 신문, 정문, 재사 등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규모가 어느정도 되고 잘 갖추어진 서원이었던 듯 합니다.

<안렴사공파 1988무진보 세보>에 실려있는 대사간 목재 홍여하(1621-1678)가 지은 <물계서원이건봉안문>을 보면 물계서원과 사당은 1661년 김응조(1587-1667)의 건의로 감천현 서북20리 부용산 기슭에 精舍 5架로 세웠고,
정축에(?년) 현 서쪽3리 고방산 밑 천전리 (당시지명 안동부 감동 물한촌, ※물계서원의 勿溪는 이곳 물한촌을 이르는 듯함)로 이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을입구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마을 노인 (조진용, 654-7236)에게 물계서원터와 물계서당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계서원이 있었던 곳은 이곳 관현1리에서 풍기쪽으로 조금 가다가 석송령 맞은편 길로 들어가면 천향리(내려오는 길에 어느 노인분은 현내리라고 함)에 샘밭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물계서원이 있었던 곳으로, 전에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현재도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이곳 관현1리에 있는 현재의 물계서당은 원래 안동권씨 집안의 소유의 오래된 누각이었는데, 1988년경에 예천유림에서 구입하여 물계서당으로 조성하여 소유주는 연명으로 되어 있으며, 의성김씨(?풍산김씨) 어느분이 관리해오다가 몇해전에 작고하시고, 어느때인가 누각을 매각한 안동권씨 집안측에서 다시 사야겠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거절하였다고 하고,

샘밭 마을에 서원 명의의 토지가 몇 두락 남아 있고, 이곳 관현1리에도 서원 명의의 대지와 밭이 약간 있다고 합니다. 샘밭 마을의 '샘밭'의 한자를 생각해 보니 정축에 이건한 "현 서쪽3리 고방산 밑 천전리"의 샘천자 밭전자 '泉田'입니다.

시간이 늦어 물계서원의 처음 건립지인 "감천현 서북20리"와 이건한 "현 서쪽3리 고방산 및 천전리" 는 답사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계서당에 올라 섰습니다. 마을 맨위 산 밑 언덕을 높게 쌓아 올린 곳에 세워져 있는데, 지붕은 다 헐어 거적과 비닐 등으로 덮어 놓은 상태이고,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지 좌우 방 두칸은 어지럽게 널려 있어 마치 폐허와 다름 없습니다.

다만 난간 마루바닥과 기둥의 목재를 보니 고색이 창연한 매우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방 문화재로 신청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문화재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勿溪書堂> 현판과 <물계서당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단기 4321 무진 (=1988)에 순천후인 김철희 근기 라 되어 있습니다. 김철희 라는 분이 어느 분인지 궁금하나 알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때는 예천유림에 연락해서 찾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없던 유적지와 건물들도 마구 만들어내는 세상에, 우리 선조님들을 배향하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건물만이라도 잘 가꾸고 보존하였으면 하는 바램과 의무감 비슷한 각오가 솟아 오릅니다.

그리고 <전고대방>과 <경상북도사(1983, 경상북도)>를 찾아서 기록을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김발용 (2003/03/29)

물계서원이 있던자리는 10호의 민가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물계서원이 있었던 옛 자취는 찾을 수 없습니다. 안동지역 종친들은 물계서원 복원을 위하여 수년간 노력하고 있다 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물계서원이 철폐된 후 지어졌다는 물계서당 역시 초라 한 모습으로 방치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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