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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속의 도산 안창호(1878-193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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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3 09:02 조회1,4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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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14

그후 한국독립당이 조직되었다.25) 한독당은 순전한 민족주의자인 이동녕, 안창호, 조완구, 이유필, 차이석, 김붕준, 김구, 송병조 등을 지도자로 하여 창립되었다. 이로부터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조직을 따로 가지게 되었다.

25)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유일당 운동의 여세를 몰아 상해에서 창립되었다.


p. 319

이 무렵 내가 연구 실행했던 사무가 하나 있으니, 곧 편지정책이다. 당시 사방을 돌아보아도 정부의 사업 발전은 고사하고, 이름이라도 보전할 길이 막연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가 해외에 있는 만큼 해외 동포들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는 동북 3성에 가장 많았는데, 거기에는 250여만 명의 동포가 살고 있었으나 사정이 본국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두번째로는 러시아령에 150여만 명이 살고 있었지만, 공산국가라 민족운동을 금지하여 그곳 동포들에게 의뢰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세번째로 일본에 40-50만 명이 거주하나 역시 의뢰할 형편이 못 되었다.

네번째로 미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에 만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 대다수는 비록 노동자였지만 애국심 하나만은 강렬하였다. 그와 같이 된 까닭은 그곳에 살고 있는 서재필 박사, 이승만 박사, 안창호, 박용만 등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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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인이 없어서 반환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회답하는 동포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중에 시카고의 김경(金慶) 같은 이는 "집세를 주지 못해 정부 문을 닫게 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즉시 공동회를 소집하여 미화 200여 달러를 모금하여 보내준 일도 있다.38) 김경 씨는 나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애국심 하나로 이와 같이 한 것이다.

38)김경의 본명은 김병준(金炳俊). 그는 도산 안창호의 지지자였으며, 당시 그가 임시정부에 보내 준 200달러는 임정인사 아홉 식구의 한 달 기본생활비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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