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泮宮(반궁, 成均館의 별칭)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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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4 11:19 조회1,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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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泮宮(반궁, 成均館의 별칭) 찾아 가는 길.

선조님들 생원진사 시험치러 오르 내리시던 길
후손 하나가 옛 생각하며 오른다.

생원진사 급제하고 관학유생, 태학생 되어 공부하시던 곳. 동재, 서재, 진사청!
성균관 관리되어 벼슬하시던 곳. 은행나무 고목 두 그루가 우람하구나!.

고풍 가득한 성균관을 안고 옛 능선따라 성균관대학교가 올라서 있다
<600주년(1998년) 기념관>이 현대식으로 깨끗하구나! 김창숙 선생 동상! 흉상!

박물관에는 기증유물 전시 준비로 9월 8일까지 휴관이란다
이곳에는 오세창 선생이 엮은 <근묵>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 곳.

근묵 권3 김제갑 간찰 (종33.5*횡11.5)
근묵 권6 김수 간찰 (26.0*37.0)
근묵 권10 김확 간찰 (24.5*28.0)
근묵 권11 김응하 간찰 (32.0*49.5)
근묵 권11 김시양 간찰 (28.5*37.0)
근묵 권14 김소(지) 간찰 (24.5*37.0)
근묵 권14 김득신 간찰 (25.2*8.8)
근묵 권18 김구만 간찰 (20.2*30.5)
근묵 권19 김주 간찰 (30.0*34.5)

그리고 김종덕(?-1785) 간찰 (20.5*37.5)
보정 김정회 선생 그리신 묵죽도 (67.0*161.0)도 있구나!

선생은 기우만(奇宇萬)에게 한학을 배우고 김규진(金圭鎭)에게 서화를 배워, 특히 난(蘭)과 죽(竹)을 일품으로 쳤는데, 유학자로도 명성이 높아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인 경학원(經學院)에서 경학을 가르치기도 했단다.

도서관에는 1398년부터 역대 성균관 대사성 화일철이 서가 하나에 가득하다.
김수녕, 김희수, 김주, 김시헌, 김치 선조님! 이곳 성균관의 최고 어른이셨구나!

泮宮(반궁: 성균관) 上谷 북쪽 골짜기
성균관을 가운데 두고 그 동쪽과 서쪽으로 泮水(반수)가 흐른다.

지금은 복개가 되어서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동쪽 개울 위편이 경치 좋고 그윽한 터전이란다.

김뉴(金紐) 선조님의 글방터 쌍계재(雙溪齋) 있던 자리는 어디메냐?
泮水(반수: 성균관을 싸고 흐르는 개울) 동쪽 개울가.



1. <용재총화>
쌍계동은 성균관 윗골(上谷)에 있는데 두 샘물이 산골의 실개천을 이룬다. 김뉴가 개천가에 초당(草堂)을 짓고 복숭아나무를 심어 무릉도원을 모방하니 강희맹이 글(賦)을 지었다.

2. <신증 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古蹟조
쌍계재(雙溪齋)의 遺址가 성균관 泮水(성균관을 싸고 흐르는 개울) 동쪽에 있는데 참판 김뉴(金紐)의 옛집이다.

3.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산천의 형승(形勝)
쌍계동은 성균관의 웃골[上谷]에 있다. 두 샘물이 산골의 실개천을 이루었는데 김뉴(金紐)가 개천가에 초당을 짓고 복숭아를 심어 무릉도원을 모방하니 진산(晉山) 강희맹(姜希孟)이 여기에 대하여 글[賦]을 지었다. 김뉴의 문장과 풍류가 당시 세상에 드날렸으므로 호걸들이 그를 따라 노는 이가 많았다.

4. <근역서화징> (1928, 오세창)
서재를 남강(南江)에 짓고 또 반궁(泮宮) 북쪽 골짜기에 쌍계당(雙溪堂)을 지어서 매양 봄이면 친구들을 불러 시를 짓고 실컷 마시며 멋지게 놀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고 지목했으니, 시와 글씨와 거문고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5. <서울600년 4권> (1996, 김영상)
성균관을 가운데 두고 그 동쪽과 서쪽으로 泮水(반수)가 흐른다. 지금은 복개가 되어서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동쪽 개울 위편이 경치 좋고 그윽한 터전이어서 한성 초기에 琴軒 金紐 (1420-?) 가 쌍계재 서옥, 곧 글방을 짓고 살았다. 여기에 사숙재 강희맹이 글로 <쌍계재賦>를 지어 일약 장안의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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