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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속의 도산 안창호(1878-193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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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5 23:22 조회1,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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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6

때마침 7시를 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윤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나는 기념품으로 그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그에게 주었다.

윤군은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 자동차를 타면서 가지고 있던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약간의 돈을 가지는 것이 무슨 방해가 되겠소?"
"아닙니다. 자동차 요금을 주고도 5-6원은 남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목메인 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네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군이 차창으로 나를 향하여 머리를 숙이자, 무심한 자동차는 경적소리 울리며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질주하였다.

나는 그 길로 조상섭(趙尙燮)의 상점에 들어가 편지 한 통을 써서, 점원 김영린(金永麟)에게 주어 급히 안창호 형에게 보냈다.
"오늘 오전 10시경부터 댁에 계시지 마시오. 무슨 대사건이 발생될 듯합니다."

편지를 보내고 그 길로 또 석오 이동녕 선생 처소로 가서 그 동안의 진행경과를 보고하고, 점식을 먹고 난 뒤 무슨 소식이 있기를 기다렸다. ---



p.338

피치 댁 전화를 사용하여 불란서 조계지내 우리 동포들의 집에 연락해 본 결과, 때때로 우리 동포들이 체포되는 보고를 들었다. 나는 체포된 우리 동포들을 법률로써 구제하기 위해 돈을 주고 서양 변호사를 고용하여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나는 돈을 줘서 잡혀간 동지들의 생계를 돕게 하고, 만약 피신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여비를 마련해 주게 하였다. 이때 체포된 사람으로는 안창호28), 장헌근, 김덕근 등과 그 외에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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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안창호는 이 사건으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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